박금남 발행인
[무안신문]산업화가 사회구조를 바꾼 것 중 하나가 핵가족화다. 농경사회 중심의 대가족 체제가 산업화가 되면서 사회는 다변화 됐다.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터를 잡고 고향을 등졌고, 그 자녀들에게 부모님의 고향은 휠링, 체험 등 타인의 고향으로 전락했다. 한때 형제였던 사촌간 왕래도 뜸해져 소홀해진 혈육관계는 핵가족 사회에서 친족의 의미도 약화됐다. 조상의 제사도 형식적이고 부모를 찾아뵈는 것은 일년에 고작 한 두번, 그나마 혈육이 모이는 명절이면 해외로 여행 떠나는 요즘, 혈육과 친척의 의미는 갈수록 희미해져 갈수 밖에 없다.

산업화는 편리성 명분으로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는 콘크리트로 덧칠해진 사각의 틀안에 갇혀 살다보니 수년을 살아도 옆집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삭막한 콘크리트문화에서 정은 사라지고, 인성보다 1등만이 인정받는 학업지상 경쟁주의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사육되다 시피 교과서 속에 파묻혀 성장하고 있다.

가정 역시 잠시 머물다 가는 터미널일 뿐이다. 가족은 가족부에 등재된 구성원으로 제각각 살아가다 보니 밥상머리에 온 가족이 앉는 경우도 드물다. 때문에 모처럼 부모의 충고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나 구세대의 넋두리가 된다. 부부간에도 저녁에 만났다가 새벽이면 헤어지는 반복생활이 직장인과 더 오래 사는 사회가 됐다.

최근 모방송국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가족간 깊은 사랑을 느끼도록 했던 점에서 높은 시청률 속에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요즘 정말 가족끼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혈육간 가족간 존속살해·살인미수 등의 범죄가 매스컴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고령의 부부가 함께 살다 한쪽의 지병 때문에 동반자살은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요즘 세태가 낳은 부모의 마음이라고 치자. 그러나 문제는 가정불화, 우울증 등으로 부모가 어린 자녀들의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가는 ‘동반자살’이 잇따라 충격을 주고 있다. 인격체가 독립되기도 전인 어린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고 빚어지는 동반자살과 살인, 자신의 빈곤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고, 자녀의 장애를 걱정해 동반자살의 극단적 범행은 앞서 노부부들의 동반자살과는 큰 차이가 있다.

최근 들어서만도 3살박이 자폐아 딸을 안고 밤중에 아파트에서 떨어져 딸은 살고 어머니는 사망한 사고, 생후 18개월 된 아들을 수심이 얕은 연못으로 떠밀었다가 죽지 않자 집안 욕조로 데려가 빠뜨려 숨지게 한 어머니, 장애를 갖고 태어난 생후 3개월 된 아들을 공원 내 장애인 화장실 세면대에 빠뜨려 살해하려 한 어머니, 말다툼을 한 남편이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아 TV를 보는데, 10개월 된 딸이 잠에서 깨 울었다고 머리와 복부 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어머니, 자녀가 보는 앞에서 어린 딸을 끌어안고 가슴에 입과 코를 막아 질식시켜 살해한 비정한 어머니들의 잇단 참극이 있었다.

설상가상 혈육간 부부간 살인 수법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한때 한 가정에서 자랐던 형제가 원수로 돌변, 총기로 형제를 사망케 하는 살인도 잦다. 맹독성 농약을 음식에 조금씩 타 두 남편과 시어머니를 사망케하여 보험금을 타낸 극악무도한 여성이 존손살인죄로 붙잡였다. 사랑 싸움도 극단적이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하여 보는 앞에서 차안에 연탄을 피워 놓고 질식사하는가 하면 무시했다고 죽이고, 묻지마 살인도 잇따르고 있다.

광주·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존속범죄는 광주가 21건·전남 101건 등 총 112건에 이른다고 한다. 유형별로는 △존속폭행 56건 △존속상해 33건 △존속협박 6건 △존속살인 5건 △존속상해치사 3건 등으로 집계됐다.

요즘 우리 사회는 오랜 경기침체로 사람들마다 화약고를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건들면 터진다고 할 만큼 나만 살면 된다는 인식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져버리게 했고, 물질만능주의와 1등 지상주의가 인성과 예절은 뒷전에 두고 너도나도 사이코패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어린시절부터 예절과 인성은 접어 둔채 삭막한 아스팔트와 바둑판처럼 나뉜 콘크리트 사각 벽속에 살면서 단절되고 갇혀 사는 원인이 크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놀기보다는 인형과 놀고, 텔레비전 인물과 가깝다. 아이큐(IQ, 지능)보다 이큐(EQ, 감성)를 중요시하는 것은 교육의 청사진일 뿐이고, 이제는 일명 잔머리라고 불리는 지규(GQ)가 대세라고들 한다. 무조건 내 자식이 최고라는 편향된 사랑이 학부모가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사회로 벽을 쌓게 만들었다.

이제 봄이다. 농촌의 들녘과 산야에 나가보면 갓 움트는 생명을 어디서든 볼수 있다. 도시의 아파트 숲 어디에도 돋아나지 않는 자연의 생명들이다. 새싹을 보고 누구도 함부로 꺾으려 들지는 않는 것처럼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봄맞이 나가 가슴에 담고 있는 응어리는 삭히고, 자연에서 생명의 귀중함을 배우면서 가정의 구성원으로 사랑이 돋아나는 대화를 가졌으면 싶다.

생명은 일회성이고, 세상은 혼자 살수 없는 만큼 살인은 어떤 동기든 용납 받을 수 없다. 나를 낮추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을 열고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자.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살아야 하고, 죽일 용기가 있다면 나머지 삶을 생각해 보자. 가족끼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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