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언젠가 경찰 친구가 ‘술에 치안유지세’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저녁 10시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면 십중팔구 음주로 인한 폭력사고인 만큼 치안유지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종 세금이 생겨나고 오르는 걸 보면 이 친구의 말도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유일하게 휘발유 값만 떨어지고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는 양상이다.

1월부터 오른 담배값을 비롯해 최근에는 13월의 보너스라 불리는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폭탄으로 ‘우회 증세’ 라는 원성을 살만큼 세금징수 꼼수가 원칙도 없다보니 국민에게 혼줄난 채 한발 물러서는 정부의 꼴이 신뢰감을 잃기에 충분하다.

지난 26일 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세금은 2013년 기준 6천314달러(약 683만원)로 1인당 세금이 2008년 5천51달러에서 5년 만에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9개국 중 증가율이 4번째로 높았다.

이 액수는 소득세, 법인세 등 조세에 사회보장분담금 등을 더한 전체 세수를 인구 수로 나눈 수치로, 국민 1명이 낸 세액과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세금이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최근 연말정산을 둘러싼 증세 논란은 세금 부담 증가와 낮은 세금 비중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현재의 세수로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여기에는 경쟁적으로 여야가 복지 공약을 남발한 복지재정이 경제 수준에 비해 앞서가고 있다고도 볼수 있다. 따라서 복지 지출 증가로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당장 세율을 인상하기보다는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현행 세제 내에서 성과를 거두는 게 우선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해 말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야당이 ‘서민증세’ 라며 박근혜정부를 ‘가렴주구 정권’이라고 공격했다. 각종 세금 인상 등과 관련해 여러 차례 ‘증세는 없다’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이 됐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로 수십, 수백조의 세금 감면에는 눈을 감고, 서민과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털어 수조원대의 세수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개인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도 이명박정부 말기와 박근혜정부 들어 50% 급등한 것도 세수부족과 예산낭비를 서민에게 전가하는 가렴주구식 세수행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을 지키고자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축소’, ‘예산 절감’ 등을 추진해 왔다.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정부 살림살이의 효율을 높여 복지 공약을 이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140개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5년간 134조8천억원이 더 필요했지만 세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기초연금제도도 당초 공약보다 상당히 후퇴했다는 설도 있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것을 일컫어 가렴주구(苛斂誅求)라 한다.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에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금을 밀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세 개의 무덤 앞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 자로(子路)에게 사연을 물어보라고 했다. 자로가 물으니 여인은 말했다. “과거 시아버지와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또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곳을 떠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여기는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거나 부역을 강요하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를 보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니라.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춘추시대 당시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에서는 조정 실세인 계손자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인해 백성들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나라는 가렴주구 하면 조병갑 고부군수가 떠오른다.

조병갑은 영의정 조두순의 조카임을 앞세워 여러 곳의 수령을 거쳐 1892년 고부군수가 됐다. 그때부터 그는 농민들에게 면세를 약속하면서 황무지 개간을 허가해 준 후 추수 때가 되면 강제로 세금을 부과했고, 재산이 있는 백성들은 잡아들여 불효자니 음행을 일삼느니 놀음을 하느니 하며 2만 냥의 재산을 압수했다.

이에 전봉준과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조병갑은 의금부에 압송된 후 섬으로 귀양 보내 진다.

이번 연말정산의 핵심은 정부가 지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 과세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개편한데 있다. 세액공제 전환을 통해 세수를 늘리면서 소득 역진성(소득이 많을수록 혜택을 보는 구조)도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세제 개편을 통해 1년에 약 9천억원의 세수를 확보하면서도 공제 규모를 축소했을 뿐 세율을 올리지 않았으니 증세 논란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13월의 서민증세’로 후폭풍을 맞아 사상 초유의 연말재정산 추진으로 인해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세금 자체를 뺀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으로만 20조원을 날리게 생겼다고 한다.

국민들이 납세의무를 다 하기 위해 자비로 부담하는 납세협력비용은 한해 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서 결국 추가 연말정산에 납세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국민 개개인의 납세협력비용 부담이 2배로 늘어 환급을 받더라도 실제로는 ‘증세’나 다름없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증세 없이 복지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복지 수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금을 올린다면 어떤 세금을 올릴 것인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는 법인세율 인상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고통 분담을 통해 가능하다. 당장 화난 민심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누가 얼마나 고통을 분담하게 될지에 대한 발전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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