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임금이 즉위시 어른이 대신 정사를 보는 것

[무안신문]수렴청정(垂簾聽政)이란 본래는 왕대비가 군신을 접견할 때 그 앞에 발을 쳤던 관례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수렴청정은 나이 어린 임금이 제대로 정사를 돌볼 수 없을 때 왕대비 또는 대왕대비가 신하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정사를 이끈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후에는 임금이 어리다는 이유로 외척을 끌어들여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폐해를 낳게 됐다.

그럼 우리 역대 왕조에서 행해진 대리정치는 얼마나 될까?

기록상으로 제일 먼저 53년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7세로 즉위하자 태후(太后)가 수렴청정을 했다. 이보다 앞서 제3대 대무신왕도 11세로 즉위하여 누가 대리정치를 하였을 듯 하나 기록은 없다.

신라에서는 540년 법흥왕이 죽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7세로 제24대 왕으로 즉위하여 법흥왕의 비(妃)가, 765년 경덕왕이 죽고, 태자가 8세로 제36대 왕 혜공왕으로 즉위하자 역시 태후가 수렴청정 했다.

백제의 경우 섭정(攝政)의 기록은 있으나 수렴청정의 기록은 없다.

고려시대는 1094년 선종이 죽고 태자가 11세로 제14대 왕 헌종으로 즉위하여 사숙태후(思肅太后:선종의 비)가, 1344년 충혜왕이 복위해 5년 만에 죽고, 태자가 8세로 제29대 왕 충목왕으로 즉위하자 충혜왕의 비가 수렴청정 했다.

1349년 충목왕이 4년 만에 죽고, 그의 서제(庶弟)가 13세로 제30대 충정왕으로 즉위하자 생모 희비(禧妃)와 충혜왕의 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원나라에서는 3년 만인 1351년 제27대 충숙왕의 둘째 아들 강릉대군(江陵大君)을 제31대 공민왕으로 삼았다. 1374년 공민왕이 최만생(崔萬生) 등에게 살해되어 우(禑)가 10세의 나이로 뒤를 잇자 할머니 명덕태후(明德太后:충숙왕의 비)가 수렴청정 했다.

조선시대에는 1468년 세조가 죽고 태자 황(晄)이 19세에 예종으로 즉위하여 그의 어머니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예종과 동좌(同坐)하여 수렴청정 했다. 1469년 즉위 1년 만에 예종이 죽고 조카 성종이 13세로 즉위하자 정희왕후가 7년 동안고, 1545년 인종이 재위 1년 만에 죽고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제13대 왕으로 즉위하니 중종의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가 8년 동안 수렴청정 했다.

1567년 명종이 죽고 선조가 16세로 즉위하자 명종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가 1년 동안, 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영조의 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가 3년간 수렴청정 했다. 1834년 순조가 죽고 왕세손 헌종이 즉위하자 할머니 순원왕후(純元王后:순조의 비) 김씨가 6년 동안, 1849년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자 순원왕후가, 1863년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자 익종의 비인 조대비(趙大妃)가 약 2년 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이와 같이 한국 역대 왕조의 수렴청정은 고구려에서 1회, 신라에서 2회, 고려시대 4회, 조선시대 8회 등 총 15회로 나타났다.

수렴청정은 임금이 즉위 초에 나라의 정사를 모후나 대비에게 맡겨 외척의 정치 참여를 가져왔고, 특히 순조 이후 철종 때까지 60년간의 척신(戚臣)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조정의 문란, 부정부패, 매관매직의 성행 등을 초래 했다. 또한 탐관오리의 득세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민심이 흉흉하여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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