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박금남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옷은 시집갈 때 가장 아름답게 입을수 있고, 음식은 한가위에 가장 풍성하게 먹을 수 있으니, 우리 조상은 잘 입고 잘 먹으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 평생을 팔월 추석처럼 잘 입고 잘 먹으며, 풍요롭게 살고 싶은 민초들의 바람이 담긴 속담이다.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로 수확과 풍요의 대명사이다. 그런 추석이 다가왔다.

그런데 해마다 맞는 명절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올해는 지난 1976년 이후 38년 만에 가장 빨리 찾아온 추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아직 들녘은 황금빛이 아니다.

추석의 본질은 ‘연휴’도 있지만 직장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조상의 숨결이 배어있는 고향을 찾아 햇밥과 햇과일로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 추석을 맞은 고향 길은 길가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피로에 지친 영혼을 맑게 치유해 주는 ‘정’이 묻어 있었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뭇 위안이 됐다.

또한, 추석은 귀향하는 자식들의 성공 잣대이기도 했다.

빈손으로 고향을 찾는 이들은 누가 볼세라 어두워져야 마을로 들어섰다. 형편이 어려워 고향을 찾지 못함에도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객지에서 쓸쓸하게 추석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부모님들은 바쁜데 내려오지 말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낮부터 몇번이나 밖을 왔다 갔다 했던 풍경이 추석이었다. 그 시절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요즘 고향은 고령화로 인해 적막하기만 하다. 집집마다 있었던 감나무는 사라졌다. 각 마을 앞에 있던 작은 개울도 없어졌다.

그때의 개울에는 물고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잡아도 잡아도 또 나왔다.

겨울에는 그곳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아침 일찍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얼음이 잘 얼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개울을 찾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길이 포장되고 개거작업으로 게울이 사라지고서 고향 추억도 사라졌다. 특히, 부동산 붐이 일면서 전답을 너나없이 팔면서 고향 잃고, 산천 빼앗기고, 형제 간 우애마저 끊기는 상황이 됐다.

이웃도 없어 전통과 미풍, 협동, 공동체의식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결국 개발이 휘젓고 간 곳에 남은 것은 알량한 보상과 삶의 뿌리가 뽑힌 채 남 모르는 설움을 삭이고 있는 신(新)실향민들만 남았다.

이제 우리 이전의 부모님들은 당신들이 성묘를 다니시던 선산에 누우셨고, 우리가 부모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도 경기불황 탓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부모 산소는 도로변에 있어야 명당이라고 할만큼 우리는 많이 변해 있다.

추석은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소비심리를 통한 경기를 점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즐거워야 할 명절에 대해 반갑지 않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농산물값 하락과 농사짓는 게 죄인이다는 농민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며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수부진에 따른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사장이 쏟아내는 불만에 귀를 막고 싶지만 할 수 있는 말이기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상가들도 식당들도 만나면 너무 답답하다고 한다. 자꾸 우울해진다고도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이 온 나라가 홍역을 앓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다섯 달째지만 정치권은 특별법 공방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투자와 내수 부진으로 기진맥진한 경제를 자극하려는 경기부양책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잇따른 병영 사고로 자식 군대 보내기가 두려운데도 대책은 핵심에서 비켜나 겉돌고 있다.

국민을 절망시키는 이런 일의 근저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책임지는 지도자도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른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은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이후 돌변했다.

선거에서 이긴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은 면죄부라도 받은 듯 득의양양해졌다.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이 노숙 농성을 했고 대통령을 만나달라는데 청와대는 말이 없다.

세월호 실종자 304명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자로선 염치가 없다.

국민이 더 이상 힘들지 않도록 실종된 정치부터 복원하고, 정치를 되살려야 경제도 살아나고 사회도 안정된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갈등 현안을 외면하며 뒤로 숨지 말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소통하며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번 추석 보름달은 올해 두 번째로 커다란 모습으로 관측될 만큼 크다고 한다.

모두가 달을 보며 서민은 보다 잘살기를 기득권은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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