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칠월은 고향의 전설들이 주저리 주저리 열려 향수를 더 그립게 한다. 새콩같은 마음이라도 정리하고 싶어 지리산을 찾았다.

자연의 숨결이 또 다른 나를 찾아 주는 것 같았지만 호강은 아니고 마음의 탈애굽 이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동행 했으니 자유는 반이다. 세월호의 아픔 속에 어느 세월인지 말복과 추분이 겹치는 날 비가 내린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가 좋다. 모든 것이 대지 위의 숨결이다. 거칠어도 좋고 부드러워도 좋고 세상 악취의 시궁창을 씻어냈으며, 고임에 변화를 가져갔으며 그래서 살아있음을 지리산 산중의 빗소리가 확인해 주어 좋았다.

오늘 빗소리가 내게 들려주는 느낌이 유별나다. 이 소리가 세월의 아픔을 친구하고 싶어서 인가. 도시의 대지 위에 내린 빗소리와 아파트 베란다 창문 소리만 듣고 비의 양과 속도를 가름하는 빗소리 보다 산중의 빗소리가 정말 멋지다.

산 위의 하늘과 산 아래 땅의 만남의 빗줄기가 하늘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 위에 연결하지만 탐욕스런 도시와 사람 흐르는 강을 막아버린 허수의 위정자들. 이념의 갈등 속에 하늘과 땅위의 평화를 꽃 피우지는 못하지만 하늘은 남자이고 땅이 여자라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청춘남녀의 사랑 속에 새 희망이 시작되길래 오늘 동행한 딸과 새로 맞은 아들이 있어 이 빗소리가 더욱 좋은 것 같다.

나 어릴적 다른 계절의 비보다 여름비와 더 가깝게 지냈다. 비 오는 여름아침은 가족들이 늦잠을 자기 일쑤다.

번번한 시계도 없었고 읍내에서 전선으로 연결되는 유선 스피카도 비 오는 날이면 거의 불통이었다.
먼 등굣길은 신작로 위의 물구덩이를 피해가며 맨발로 빗길을 밝았던 지금생각하며 낭만스럽던 길이었다.

대나무 비닐우산마저 귀하던 시절이라 요소비료 비닐봉지가 비옷을 대신했다. 그래도 집에 도착하기까지 더 비가 오기를 바랐다.

통밀 개떡과 사카린 넣어 볶은 콩과 보리 볶음이 별미 간식이었으며, 밀가루전 요즘 말하는 빈대떡을 기다리는 식탐 때문이었다. 저녁이면 멸치국물에 호박 썰어 넣은 어머님의 밀가루 수제비는 지금 그 맛은 볼 수 없다.

반세기전 빗소리와 이 산중의 빗소리가 나를 다시 과거와 현재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주어 정말 좋다. 오늘 저녁 지리산 산중의 빗소리가 내 고향 빗소리를 내 마음에 전해주는데 왜 이렇게 쓸쓸할까?
고향의 빗소리는 대지를 적시면서 판로길 없어 썩어가는 양파냄새로 고향농민들 가슴 썩어 가는 냄새 일 것이다.

나 어릴적 고향의 빗소리는 평화를 노래하는 빗소리였다. 하지만 오늘 고향의 빗소리는 내 마음 쓸쓸하게 하는 빗소리가 되어 애잔한 마음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이렇게 끝머리 여름비가 오는 날은 반세기전 내 모습과 오늘 모습이 연결되어 그리운 것은 그 시절이지만 이 시절 구조적으로 정의롭지 못하고 시장 논리의 잣대로만 그어 대는 고향농촌 현실을 이 땅 위에 위정자들에게 하늘의 정의와 땅에 진실을 이 빗소리가 연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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