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시장터인 기왓골 마을
무안읍 성남7리 와동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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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시장터인 기왓골 마을
무안읍 성남7리 와동 마을
  • 백창석
  • 승인 2014.04.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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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석의 마을탐방[스토리가 관광자원이다]

城南里는 무안읍소재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무안읍성의 남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외읍면의 지역으로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는 월천리 학교리 성저리 만창리 충양리 후청리 대동리 일부를 합하여 무안읍에 편입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시장통 남문밖 만창 큰골의 4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인구 증가로 일신동 후청동 만창 대곡 산성 하마동 와동 서라동 등 8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미륵사와 남악사 그리고 남산공원 입구의 碑群과 석장승 두기가 있다. 초당대학교와 백제고등학교 전화국 경찰서 산림조합 5일시장 등 각종 기관과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5일 시장터인 기왓골 마을
와동은 성남5리에서 분리된 마을로 1981년 구장터의 시장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5일장 부근을 포함하여 산림조합 미목 우성 일봉 아파트가 여기에 해당된다. 남문밖에 있었던 불무제 아래의 구시장은 불어나는 인구수에 비해 너무 좁아 무안군에서 최고의 적지로 찾은 곳이 현재의 이 마을이다. 당시 이곳은 무안군의 용역보고에 따르면 시장지로서는 가능성 활용성 적절성 발전성 등 최고의 적지로 평가를 받았던 곳이다.

당시 군유지였던 이 일대는 처음에 5,000여평의 부지에 시장터가 조성되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자 2,000여평을 개인에게 불하하여 현재는 3,000여평의 부지에 시장이 조성되어 있다. 한때는 시장이 활성화 되어 포목점까지 있었을 정도로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섰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감소와 상권의 다변화로 현재와 같이 시장 주변의 길 가에만 시장이 형성될 뿐 원래의 시장터에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선 건물이 현재 장안슈퍼를 비롯한 15동의 구조물이며 현재도 초창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90년대 무안군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였으나 예정대로 활성화 되지 않자 농산물 시장을 신설하였다. 하지만 법률적 검토가 미흡해 농산물 시장을 세워놓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오히려 5일 시장 활성화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다시 시장 이전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현재의 시장터가 좁고 교통혼잡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좀 더 넓고 쾌적한 시설을 갖춘 시장터를 물색하여 그곳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불만이 많다. 대책은 없고 설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터로 확정된 금광아파트 앞 부지가 과연 당국의 의도대로 활성화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불무제에는 주민들의 애증이 남아있어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80년대 초창기 시장의 모습은 상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불무제를 메우기 위해서 무안군에서 발생하는 각종 쓰레기를 갖다가 매립을 하였는데 쓰레기에서 나오는 각종 냄새와 오물은 참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파리떼의 습격은 상상을 불허했다고 한다. 천장을 보면 새까맣게 파리들이 붙어 있어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은 기겁을 하였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불무제가 메꿔진 것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무안읍의 중심에 커다란 방죽을 조성한 것은 풍수적인 비보 사상 때문에 선인들의 지혜가 발휘된 것인데 개발 우선주의에 밀려 그것이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성동리 동문 밖 용산 마을에서부터 중들(중평)을 지나 닭삯골을 거쳐 교촌리 차밭머리까지 울창하게 우거진 숲띠가 있었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무안이 쥐 형국이고 오리정(개설피) 마을이 고양이 형국이어서 쥐가 마음껏 활동 하려면 고양이에게 보이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보진압풍수이다. 지금은 개발로 예전의 숲이나 방죽도 찾아 볼 수 없으나 주민들의 의식 속에는 생생히 남아 있다.

시장이 안정되자 주변에 아파트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먼저 우성아파트가 서고 미목아파트 그리고 서라아파트에 이어 일봉아파트까지 들어섰다. 瓦洞이란 지명은 서라아파트가 들어선 자리가 예전에 기와를 구웠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서라아파트 자리를 기왓골이라 부른다.

마을이 형성된지 얼마 되지 않아 공동체 놀이나 전통문화 같은 것은 없지만 생활에서 느껴지는 억척스러운 문화는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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