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거철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요즘 후보간 흠집 내기가 바닥에서 적지 않게 돌고 있다. 비난도 살아남는 전략 중 하나라고 쳐줄 수는 있겠지만 선거에 나선 사람들이 나잇살(?)은 충분히 먹었다고 본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꿀 만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상대를 입방아에 넣고 절구질하는 데 앞장 서는 걸 보면 고질적 선거병이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이 흘러도 정치판 얼굴은 ‘그 나물에 그 밥’ 단골들이다.

그들이 계속 정치판에서 놀고 있으니 묵은 선거방법이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선거는 군민들에게는 정치적 무관심과 환멸이 깊어만 가고, 4년 만에 한 번씩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지역의 기득권이 가세해 지자체는 편가르기로 얼룩진 그들만의 천국이 된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턴가 거짓이 진실처럼 위장되어 있어 진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어디를 가든 원조라는 간판을 단 식당이 많다. 참기름도 참참기름까지 나올 정도니 음식을 먹고도 정말 원조 집에서 먹은 것인지 참기름도 진짜 참기름인지 의심하는 세상이 된지 오래이다.

이런 삶이 그대로 정치에서 재현되고 있다. 관권과 금권 그리고 중상묘략과 흑색전선이 난무하는 난장판 속에서 진실은 없다.

요즘 중앙정치판을 보면 선거는 거짓말쟁이를 뽑는 꼴이다. 공약을 하고도 다수의 힘만 있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대표적 일례이다.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약속은 지키면 되는데 국회는 정당공천 폐지를 두고 공회전만 하고 있다. 대선 후보시절에는 공천 폐지가 위법 가능성이 높은 것을 왜 말 못하고 있다가 지금 와서는 위법이라며 허구한 날 말장난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말할 자격이 있을까. 민주주의 다수의 논리 힘이 얼마나 독재인지를 보여주는 민주주의 반증을 요즘 국회에서 보면서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가 싶다.

당선만 되면 나만 지키려는 사람이 된다. 포장은 소통을 외치지만 내심은 불통이다. 51%의 지지 정책 편가르기로 권좌를 누리면서 51% 정책만 펴면 된다. 49%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위민행정 위민국가를 외친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 내 보호막 정책들이 과대포장돼 유권자에게는 위민으로 선전된다.

나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시나브로 기득권자가 되어 가고 있고 편 가르기를 솔선수범하는 권모술수를 쓰고 있다.

소통은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 속에 녹아 들어가 평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과는 소통이 아니라 건의하고 수용하는 수직관계 일 뿐이다. 다만 소통은 갑이 을의 말을 어디까지 인내하고 들어주느냐이고, 이 과정에서 인격의 차이가 드러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가부 결정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권력 남용이다.

말보다는 침묵이 더욱 귀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말이 의사표시의 하나이듯이 침묵도 의사표시의 한 방법이다. 침묵하고 있어도 그 사람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게 인격이다.

분명한 것은 권력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선거를 통해 나를 선출해 준 사람들에게서 위탁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권력은 주인공이 아니라 유권자가 주연이고 권력은 조연에 불과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처럼 권력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군수와 정치인은 그 이름자만으로도 충분히 권력을 누리고 있다. 이 권력을 보여주려는 남용에서 탈이 나고 편이 갈라지게 된다. 소유하려는 욕심이 더할수록 권력남용도 커진다.

무엇이든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한다면 사람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거칠어지고 무디어 진다.

나뭇가지에 묵은 잎이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 계절이 바뀌어도 새 잎이 돋아나지 못한다. 그렇게 될 경우 나무는 성장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이웃보다는 자기 몫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당연히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갈 수 밖에 없다.

조급함 보다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정치 후보군에게는 조급하지만 유권자에게는 아직 선거가 멀리 있다.

그래서 여유를 갖자.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의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 받쳐 주고 있다. 군민은 지금 그 공간이고 여백이다. 의식 개혁이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변혁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에서 찾아낸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진실했고 성실했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가 결정된다는 것을 지방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은 늘 되새겨 보았으면 싶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