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가 축산단지였던 마을
삼향읍 왕산7리 덕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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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축산단지였던 마을
삼향읍 왕산7리 덕산 마을
  • 백창석 소장
  • 승인 2012.12.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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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석의 마을탐방>스토리가 관광자원이다.

旺山里는 삼향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4㎞ 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수산을 주산으로 광주 목포 간 1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남쪽으로는 간척으로 형성된 농지가 있으며 북으로는 수도생활과 봉사생활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는 디아코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나주군 삼향면 지역으로 1895(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무안군에 편입되고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갈리, 평산동, 마동, 금동과 원동, 곽단동의 각 일부를 합하여 왕산리라 해서 다시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평산, 왕산, 금동, 마갈, 마동, 동뫼, 덕산 등 7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1986년에 완공된 복길간척지가 금동 마을과 청계복길 마을을 연결하며, 우도(소섬) 중도(가운뎃섬) 계도(닭섬) 갓섬 등 네 개의 섬이 있다. 왕산 마을에 초의선사 생가터가 있으며 평산 마을에는 한산촌이 있다. 동뫼에 천애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다.

▲평온하고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마을
덕산은 왕산7리에 속하는 마을로 처음엔 독안이골이라 불렀다. 이후 공동뫼라 했고 그 뒤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했다. 독안이골이라 했던 것은 독을 구웠던 가마터가 있었던 곳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독을 구웠다는 곳을 봤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민들의 말로는 이곳에 집을 짓기 전에는 수많은 자기 파편들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형을 보니 오목한 모습의 항아리 형국으로 독 안에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여겨진다.

공동뫼라 불렀던 것은 예전 이 마을에 해당되었던 디아코니아 주변이 공동묘지 터였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 어느 스님이 마을 앞을 지나다가 마을의 지형을 보고 지명을 德山이라 하면 마을이 평온하고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해서 현재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은 국도1호선이 지나가는 지산리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산의 지맥이 마을의 주산을 이루고 있고 앞에는 범바위산이 자리하고 있다. 지형이 좁고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예전에는 지극한 빈촌이었다. 옆 마을인 지산리 복룡마을에서는 범바위산을 마봉(馬蜂)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곳에서 보면 말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100여년 전에 한두 집이 살다가 이어 6가구가 모여 오랫동안 살았었다. 그후 시간이 지나면서 30여 호가 넘는 가구가 들어섰다. 이처럼 주민이 많아지면서 2004년에 왕산1리인 평산에서, 6리 동뫼, 7리 덕산으로 分里되었다.

처음에는 무안박씨가 들어 와 살았으나 후에 나주정씨가 들어오고 이어서 인동장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입향조에 대한 정확한 인적 사항은 족보를 볼 수 없어 확인할 수 없었다.



▲온 마을이 축산을 했다.
원래 이 지역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박토였다. 주민들 표현대로 보리를 갈면 보리가 자라지 않을 정도로 박한 땅이었다. 농작물 대신 잔디를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다가 30년 전에 주민 중 한사람이 돼지를 가져와 기르면서 대부분의 세대가 양돈을 하는 축산단지가 되었다. 한때는 32호중 30호가 양돈을 하는 양돈단지가 되었으나 현재는 5가구가 양돈을 하고 4가구는 개를 기르고 있으며 다른 가구는 고구마를 심는다거나 약초를 재배하기도 한다. 다행히 친환경적으로 가축을 기르고 있어 주변에 피해를 주지는 않고 있다.

주민들 구성이 32가구 중 31가구가 외지인들이다. 토착민이 없는 대신 주민들 스스로 협조하고 화합을 이루어 살기 좋은 마을을 가꾸어 가고 있다. 또한 농지가 적어 외지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면 생계유지가 어렵다.

앞산을 범바위산이라 부르는데 호랑이 모습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범바위 위에 남생이 모습을 한 바위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바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남생이 바위에 고인물이 남자의 생식기에 생긴 병을 치료하는데 특효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아무리 가물어도 남생이 바위에 한 홉 정도의 물은 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찾는 사람이 없어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30여년 전에 마을에 자리 잡은 해도자기라는 도자기 제조 업체가 있었는데 2년 전에 부도가 나면서 없어졌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국도 1호선이 마을 옆을 지나가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편리해졌다.

광-목간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꽃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었다. 중샘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특이한 것은 1년 중 늦가을 1달만 물이 나오지 않고 그 외에는 늘 물이 넘쳤다고 한다. 현재는 농지를 조성하면서 메워져 버렸는데 주변에 미꾸라지도 많았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드물게도 매월 27일에 반상회가 열린다. 이때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여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회의 때 일정액의 회비를 걷는데 이 회비로 마을의 일이나 주민들의 애경사에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신생마을로서는 드물게 빨리 마을회관을 지었는데 그 밑받침이 되었던 자금이 회비였다. 해서 주민들간 협조 체제가 잘 이루어지며 의사 소통이 잘 되어 주민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마을의 위치가 높은데 있다 보니 공기가 좋다. 앞으로 주민들은 축산단지를 없애고 이 자리에 주택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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