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단상

텔레비전 연속극 드라마는 잘 보지 않는다. 매일 드라마에 얽매여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야간자습 마친 고등학교 딸과 함께 밤 10시를 조금 넘어 집에 들어와 거실에 켜진 텔레비전에 눈길을 돌렸다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고등학교 딸이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경찰인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함께 집에 들어가려던 아버지는 직장 동료에 붙잡혀 술을 마신다. 그 시간대 딸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딸을 한번 친 자동차는 죽지 않자 두 세 번 앞뒤로 오가면서 딸의 몸위를 지나간다. 섬뜩했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딸아이는 병원에 실려간다.

이 상황을 모르는 아버지는 그 시간에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안타깝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아버지가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수술이 성공하기만을 기다린다.]

같은 부모마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시청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에 대해 감정이입을 실어 반드시 본다. 설령 보지 못하는 날이 있으면 재방송을 통해 다시 보는 열성까지 보인다.

하루아침에 딸을 잃고 딸로 인해 환상까지 보게 된 아내는 추락사를 당한다.

아내와 딸을 잃은 주인공(백홍석)은 딸(수정)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서는 몸무림이 악에 바치는 현실을 쫓는 우리 서민의 모습이다. 주인공에게서 진하고 진한 진정성의 힘을 본다.
무엇보다 <추적자>는 현실을 그대로 들고 와 그대로 벗겨놓았다.

주인공의 상대는 권력을 쥐고 대통령을 꿈꾸는 강동윤이다. 강동윤은 부인이 저지른 주인공의 딸 교통사고를 숨기기 위해 그리고 대통령의 길을 가면서 막힘이 있는 곳은 주인공 친구(의사)부터 관련된 모든 사람을 돈으로 회유해 성공한다.

그러나 주인공만은 다르다. 자기 앞길을 막는 주인공을 붙잡아 두고 똑 같은 회유도 한다. 주인공은 수정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다. "아픕니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져야 한다"며 오로지 딸의 죽음과 아내의 사고사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만 몰입할 뿐 정치도, 권력도 돈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주인공은 법정살인 직후부터 도망자 신세가 돼 늘 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닌다. 도망자라 의상도 단출하다.

반면 서회장이나 강동윤은 절대 안 뛴다. 말로만 한다. 서회장과 강동윤이 자신들의 바둑판 안에서 주인공을 갖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주인공이 안쓰럽다. 속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울분이 풀리려면 주인공이 잡히지 않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니 계속 도망간다. 주인공은 평범한 시민이고 우리 모두를 대변하다보니 더 열심히 뛴다.

법정에서 총기발사, 잦은 탈출, 허술하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도망가는 장면 등은 현실성이 낮은 픽션이다. 그래도 '옥에 티'정도로 용서하고 넘어간다. 권력 앞에 몸무림 치는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데는 진실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어설픔이 중요한 게 아니다.

최근 강동윤에게 총을 겨눴다가 쏘지 않은 것도 그가 죽어 진실이 안 밝혀지면 드라마가 소용이 없다. 주인공이 원하는 복수는 강동윤이 자기 입으로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지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발씩 진실을 향해 가는 것은 맞다. 후반으로 갈수록 디테일이 다소 떨어지긴 해도 여전히 긴장감이 있다.

현실을 생생하게 담을수록 막장드라마가 된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이런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정치와 자본의 결탁, 시민의 일상을 겁박하는 권력의 야욕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자본과 정치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누군가를 압박하고 짓밟는다는 것을 대 놓고 보여준다. 늘 법대로 처리해를 입에 달고 사는 1%의 권력자들에 의해 생활의 중요한 요소들을 빼앗겼고 정치권력보다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돈은 정치가를 겁박한다.

대통령 선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추적자>는 다음주면 끝이 난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정치가 바로 이 드라마와 같다. 대통령의 친형이 법정 구속되고,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소환돼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시원하지가 않다.

드라마에서 대법원장을 지낸 변호사는 "전쟁의 북소리가 들리면 법은 침묵한다."고 말한다.

현실로 돌아와 오는 12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드라마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전달할지가 궁금해 진다. 지금까지 워낙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막장드라마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또 어떤 반전이 있을지 모른다.

결말은 권선징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동윤이 벌의 처벌을 받고, 또 주인공은 구속된다면 재미없다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숙제이고 풀어나가야 할 모든 서민들의 과제인 또 다른 반전으로 악이 선을 이기는 드라마로 종결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시사해 줄 필요가 있다.

짧은 명대사 한마디들이 매회 큰 반향을 만든 것은 딸을 둔 부모로써 대한민국의 힘없는 서민 아버지들의 용트림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우리의 옆집, 윗집, 아랫집 사람 다 어찌 보면 그 주인공이다. 서회장이나 강동윤 같은 사람은 MB정부에서 말하는 소위 1%일 뿐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이 떠오른다. 군사독재 하에서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김 대통령이 부르짖은 '행동하는 양심'이 한 단어에 담아 낸 진실은 약자는 뭉쳐서 행동해야 변화를 가져 올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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