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을 앞두고 전국이 시끄럽다. 4년마다 돌아오는 연례 행사지만 선거 때만 되면‘그들(정치인)만의 구태정치 재현’잔치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군민들의 지나치리 만큼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올까 싶기도 하다.

당연지사 선거 방법 등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데 정치 추종자들이라고 변할 수야 있겠는가 싶으면서도 그 열정이 군정에 반영됐으면 하는 바램이 조금은 앞 섰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어찌됐든 편가르기와 네거티브에 앞장서는 후보 추종자들이 개인 입신을 위해 뛰고 있는 후보들에게는 너무 필요하고 큰 힘이다. 그러나 이들 편가르기와 네거티브로 갈라지는 민심을 보면서 우리 지역의 자화상을 보는 듯 싶어 안타깝다.

문득,‘좀비’가 생각난다. 좀비의 어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이티의 부두주술에서 유래한다. 죽은 자를 흑마술로 되살려 영원히 노예로 살도록 했다는 아프리카 괴담이 1932년 최초의 좀비영화‘화이트좀비’로 탄생해 다양한 영화 스토리로 만들어져 오고 있다.

좀비는 힘없이 흐느적대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무기력하고 빛을 싫어해 밝음과는 동떨어져 있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인육을 갉아먹는 역할 밖에 못한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밀려들고 좀비들은 마치 슈퍼바이러스처럼 인간들을 좀비화 시켜 간다. 인간의 대응보다 빠르게 번져 나가는 신종 전염병들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좀비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서로간에 신뢰와 지지의 관계를 벗어 던지고 서로를 감염자로 의심하며 상대방에게 칼끝을 드리우게 된다. 곧 좀비가 되기 전에 나와 다른 모두를 적(좀비)으로 내모는 악마가 되어 버린다는 비극이 많다. 때문에 좀비는 인류 종말을 그리는 세기말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비유된다.

선거를 앞두고 선량한 유권자들이 후보 추종자들의 네거티브 등으로‘좀비’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보지지 생각이 다르면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부터 시작된다.

요즘 우리 지역은 4·11선거를 앞두고 일명 패거리 정치와 각종 험담 그리고 설설 등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다.‘아니면 말고’식이라는 것.

이를 보면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일생 동안 자신들의 틀속에 가둬 두려는 오만함이 없지 않음을 보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약자들은 잃을 게 없다보니 네거티브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그 속에 빠져드는 현상이 많다. 어느 학자는 유권자의 심성을 가학적 쾌락이라고 비유했다. 자신에 아무런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데도 누군가의 이득이 줄어드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우리 지역은 총선에다 보태진 군수보궐선거가 함께 진행되다보니 더욱 시끄럽다.

군수 후보보다는 국회의원 후보에 더욱 관심이 많은 듯도 싶다. 물론 여기에는 그 동안 앙숙 관계로 지내 온 서삼석, 이윤석 후보의 한판 대결에 편을 갈라 힘을 보태려는 유권자들의 열정에서 기인된 부분이 없지 않았겠지만 진정 군민에게는 중요한 선거는 군수 선출 임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아울러 군민들은 정치인들의 들러리가 아니고 주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루소는“유권자는 투표를 할때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조선의 세종대왕은“정치인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고 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정치인들이 무엇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지를 보여 주는 말이다.

지역 기득권들이 쏟고 있는 후보에 대한 맹신의 열정이 군정의 각종 사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현재 무안군은 시군통합 등 귀로에 서 있음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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