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 ‘스토리’가 관광자원이다

본지는 무안지역 ‘스토리텔링’ 발굴 일환으로 지역의 전설 및 마을 유래담을 연재합니다.(마을탐방은 무안향토사연구소 백창석 소장의 현장 탐방 기고로 이루어집니다) -편집자주-

五柳里는 현경면 소재지에서 북서 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쪽은 간척지와 접해 있고 중앙에는 검무산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24번 국도를 경계로 마산리와 접해 있으며 서쪽의 간척지는 지식저수지와 오류저수지의 용수를 받아 경작하고 있다. 또한 동쪽의 간척지는 사은 저수지의 용수를 받아 경작하고 있다. 본래 함평현 다경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교리, 어은동, 곡지동, 신정리를 합하여 무안군 현경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오류동, 어은동, 곡지, 신정, 삽다리 등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五柳’라는 지명은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의 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초야에 은거하면서 즐겨 사용했던 지명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는 해제면에도 오류동이라는 지명이 있다. 오류동에는 각종 碑群과 몽양재가 있으며 곡지동엔 경심재 그리고 어은동엔 귀후재가 있다. 모두 김해김씨 관련제각이다.

▲ 사교마을 전경


▲모래다리의 마을

삽다리는 오류5리에 속한 마을로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던 옹산을 마주하고 있다. 삽다리라는 지명은 沙橋 즉 모래다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마을 앞의 지형이 만(灣)의 형태이다. 해서 현경에서 저승재를 넘어 해제 방향으로 갈 때는 마을 앞까지 들어온 바닷길을 돌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모랫길을 가로질러 가게 되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이 사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를 통해서 지명의 변천을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함평현 다경면 沙橋里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12년의 자료엔 무안군 다경면 사교리, 1917년의 자료엔 무안군 현경면 오류리 사교로 표기된다. 그러다 1987년엔 마을이름이 나오지 않다가 근래에 들어서 다시 나온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오류동과 같은 김해 김씨 金星(1674-1732. 자-자장, 호-해은당)이다. 해은당은 나주 시랑촌에서 세거하다가 1700년대 초에 이곳 현경면 오류리로 이주했다. 공은 늘 성정을 수양하고 명리를 멀리 하였으며 후손들의 교육에 힘썼다. 또한 공은 학문이 깊어 그의 업적이 오류정사기와 면성지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은 80년대 초에 취락개선 마을이 되면서 옆 마을인 어은동에서 분리 되었다. 해서 마을유래지에도 마을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사교 마을은 검무산을 주산으로 하고 작은 봉대산을 안산으로 하며 마을 왼쪽으로는 현경에서 해제로 가는 현해로가 지나고 있다.

검무산은 오류리의 주산으로 해발 100미터가 조금 못 되는 높이의 산이다. 제일 높은 곳은 무재봉이라 하며 그곳에서 재를 지내기도 하는데 아이를 못 낳는 집에서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기원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주민들이 비가 오게 해달라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저승재의 전설이 있어

▲ 돌도끼
이 마을에서 용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저승재라 하는데 예전에는 얼마나 험했든지 여러 형태의 이야기로 내려오는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 재는 조선시대 신안군 임자도와 지도읍으로 가는 유배길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재를 넘으면 다시는 돌아오기 어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충청도 한 사찰의 스님과 해제 강산의 원갑사에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이 마을은 지리적인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통로이기도 하였다. 마을 앞까지 배가 들어왔기 때문에 각종 물산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해제나 지도에서 대처로 나가기 위해서는 마을 앞의 저승재를 넘어야 하는데 이 마을은 저승재 아래에 자리잡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도 한다. 해서 어느 스님은 마을의 지형을 보고 萬戶는 들어설 수 있는 마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지로 시골마을인데도 이발소, 방앗간, 농약사, 목공소, 약국, 주유소, 슈퍼마켓, 떡집 등 많은 가게가 들어서 있다.

마을 앞 길 건너에는 사은 저수지가 있다. 원래는 삽다리 저수지라 했는데 요즈음엔 사교와 어은동에서 한자씩 따와 사은 저수지라 이름했다. 저수지 밑에는 언장들이라 부르는 간척으로 형성된 농지가 있다. 간척지는 80여년 전에 김남석 일가가 방조제를 막아 조성한 것인데 경작지가 적은 이 마을에 주요 농지가 되었다. 방조제 이름도 남석 방조제라 하였다. 얼마 전까지 이를 기념한 김남석의 공적비가 있었는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용정리 성재동으로 옮겨졌다.

이 마을을 포함한 오류리에는 해제출신 여자들이 많이 시집와서 산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해제가 워낙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걸음이라도 대처로 가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고 이 마을 주민들은 말한다.

사은 저수지 주변에는 질 좋은 점토가 많이 나온다. 해서 얼마 전까지 저수지 옆에는 옹기를 구웠던 점등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었다. 점등 밑에는 물맛이 좋은 샘이 있었는데 점등샘이라 하였다. 주민들은 그 샘을 보고‘점등놈들이 먹기는 아까운 샘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물이 좋았다고 한다.

주민 중 한 사람이 마을 뒤에서 밭을 경작하다가 돌도끼와 화살촉을 수습하였다. 마을에는 1935년 망운보통학교부설 간이학교로 설립되어 1943년 현경북국민학교로 바뀐 뒤 1993년에 현재의 현경북초교가 된 초등학교와 현북교회가 있다. 현경북초에서 마산 신기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점이라 하였고 마을에서 곡지로 넘어가는 고개를 당산고개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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