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무안갯벌의 열 두 달‘갯것들’-⑪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 생태·문화자원을 찾아서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무안갯벌의 열 두달’이란 주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의 무안지역 연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해 현장 취재를 격주간으로 20여회에 거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홍거시 잡다가 사람 죽겄네…”

함평 돌머리와 더불어 갯지렁이 채취로 이름난 현경의 한 지역을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밀가루 사업으로 방조제를 막은 곳에 들어섰더니 갯벌을 가로지르는 진입로가 보인다.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갯벌에 다가서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공구조물이다.

주민들은 갯지렁이를 크게 ‘홍거시’, ‘청거시’로 구분한다. 홍거시는 갯지렁이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 부르는 이름이다. 목포대 임현식 교수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홍거시는 ‘바위털갯지렁이’로 확인됐다. 몸길이가 26㎝ 정도로 마디수는 300개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낚시 미끼 중 최고의 대접을 받는 종이다. 직접 채취하는 주민들은 1㎏을 55,000원에 넘기지만 시중에서 구입하려면 8만원을 줘야 한다.

청거시는 청색을 띠고 있어 일명 ‘청충’으로도 불리는데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몸길이 20㎝ 정도로 180개의 마디를 가지고 있다. 판매 값은 1㎏에 5만원이지만, 농어를 비롯해 다양한 어종을 잡는 미끼로 손색이 없다. 이밖에도 ‘집거시’라는 갯지렁이도 자주 거론되는데 ‘털보집갯지렁이’를 지칭한다. 내만의 파도가 약한 곳에 짧은 관 모양의 집을 짓고 살아서 붙은 이름 같다. 생명력이 유독 약해 낚시점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종이다.

이날 갯지렁이 채취에 참석한 지역주민은 60∼70대 여성들로 모두 한마을 주민들이다. 물때에 맞춰 아침 8시 갯벌에 나와 홍거시를 파내는 장소인 먼 갯벌까지 최소한 2㎞에서 4㎞까지 걸어 들어간다. 모두가 연로하고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계시니 들어가고 나오는데 한 시간씩 걸린다. 왕복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한물 때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두어 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께스 하나와 ‘쏘시랑’ 뿐이다. 쏘시랑은 갯벌을 파내는 도구로 세 개의 창이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손잡이는 쇠꼬챙이 만큼이나 짧은 것이 특징이다. 왼손으로 쇠꼬챙이의 윗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몸의 힘을 실어 갯벌에 박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갯벌을 떠내며 갯지렁이를 찾아낸다.

“힘으로 몸을 숙여서 (쏘시랑을) 누르제. 글안해도 사람 죽겄는디 이렇게 안하고 찍어서 하면 힘들어 죽어분단 말이요.”

갯벌 위를 걸어 다니며 상체의 힘을 이용해 쏘시랑을 박지 않으면 힘들어 금방 지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열심히 채취하면 한 물때에 1㎏ 남짓 채취할 수 있다. 제법 많이 잡은 것으로 보이는 한 분에게 “2키로는 잡았겄소?” 하니 단방에 되돌아오는 말. “오매, 그라면 2키로 다 주지 말고 키로 오백만 주고 사쇼.” 방금까지도 “힘들어 사람 죽겄소” 하던 분들에게 위트가 넘쳐난다. 

이들은 매일 갯지렁이를 채취하지는 않는다. 중간상인의 주문이 있을때만 작업을 한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주말 낚시꾼들의 수요를 예측해 상인들이 일정량을 요구하면 나오는 구조다. 갯벌에서 겨울 굴 채취 외에는 갯지렁이 채취가 맨손어업으로는 유일했다.

목포에 거주하는 수입상은 해당어촌계와 계약을 맺어 1년간 갯지렁이를 채취하는 댓가로 100만원을 지불하고, 채취하는 지역주민들과 중간상인도 각각 ㎏당 500원씩 어촌계에 지불한다. 결국 한해 갯지렁이 생산으로만 약 200만원 안팎의 수입이 어촌계 공동수입이 되는 셈이다. 바다의 환경미화원인 갯지렁이를 내 주는 값치고는 너무 싸다. 이와 같은 우려는 같은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어민들에게서 먼저 나온다. 갯지렁이 채취가 계속되면서 낙지개체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쏘시랑으로 판 자리에는 전혀 낙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란 짐작을 가능케 한 이야기다. 갯지렁이 500마리가 성인 한 사람이 하루에 배출하는 배설물 2㎏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생물종다양성을 유지하고 환경정화기능까지 담당하는 갯지렁이가 향후에도 지속가능하게 보전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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