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무안지역 ‘스토리텔링’ 발굴 일환으로 지역의 전설 및 마을 유래담을 연재합니다.(마을탐방은 무안향토사연구소 백창석 소장의 현장 탐방 기고로 이루어집니다) -편집자주-

城東里는 무안읍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조 초기에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무안읍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성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성은 무안 대굴포에 수군처치사영이 있을 때인 1430년(세종 12년)에 만들어졌다. 무안읍성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인데 자연스럽게 흐르는 개천을 이용하여 해자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남문, 서문 동문 등 세 개의 문이 있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도 성을 중심으로 성내리, 성남리, 성동리 등으로 나뉘어졌다.

▲여트물 마을 전경

▲물길 가에 위치했던 마을성동리는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동문외 대천동 대사동 마기곡 용산 복용동리 지촌리 등을 합하여 무안읍에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대사동 여트물 용산 실학실 복룡 등 5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원성동 여트물 용산 복룡 대사동 동문밖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무안군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천주교 성당과 약사사와 里人寺址 등이 있다.

성동리는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동문외 대천동 대사동 마기곡 용산 복용동리 지촌리 등을 합하여 무안읍에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대사동 여트물 용산 실학실 복룡 등 5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원성동 여트물 용산 복룡 대사동 동문밖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무안군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천주교 성당과 약사사와 里人寺址 등이 있다.

여트물은 성동2리에 속하는 지역으로 여튼 물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오래 전 무안은 영산강 물이 유산정 앞까지 들어왔다. 지금도 무안천을 비롯한 수로에 해당되는 곳을 파면 어김없이 뻘이 나온다. 이러한 지역에서 여트물이란 지명은 강가 또는 물길의 가에 위치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마을 구역을 보면 광-목간 도로 아래 부분에서 목포식당-덕신이발관-대가설렁탕-제일병원을 포함한 지역이다.
지명의 변천을 문헌으로 보면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읍내면 동문외리로 나오고 1912년의 자료엔 무안군 외읍면 마기곡리로 1917년의 자료에는 외읍면 성동리 동문외리와 마기곡리가 나온다. 이후 1987년의 자료엔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여트물로 나온다. 여트물이란 지명은 근래에 붙여진 지명으로 예전에는 동문외리 또는 마기곡(마구실)으로 불렸다.

이 마을은 140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구실(마기곡)은 말을 사육하던 고마청(雇馬廳)이 있었던 곳이며 성안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타고 온 말을 매어 놓았던 곳이어서 성의 형성과 함께 주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여겨진다. 또한 동문밖이란 말도 성의 축조와 함께 형성된 지명이어서 마을의 형성은 성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입향조는 추정하기 어렵다. 마을의 특성상 동족 마을이 어렵고 오래 산 성씨가 없을 뿐 아니라 성씨도 성안의 성씨와 성밖의 성씨가 달라 어느 성씨가 먼저 이 마을에 입향하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

▲개발이 더딘 마을

▲원당산의 차밭

이 마을은 원당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국도 1호선이, 옆으로는 무안- 해제 간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원당산은 무안읍의 후주산으로 공산(현재 무안 성동 공원)을 옆으로 하고 있다.
원당산 기슭에 무안군청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 터를 잡을 때 일화가 있다.

무안군 초대군수였던 정시채씨가 산의 이름을 보고 군청의 터 자리를 잡은 것이다. 즉 원당산은 원님 집이 들어설 자리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원당산에 있는 바위에는‘원님이 바위에 서서 읍내를 살펴본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구전이 있다. 하지만 이번 탐방에서 올라 가 확인했더니 발자국은 찾지 못하고 300여평의 차밭만 확인했다. 현재 원당산에는 무안정수장과 상수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청은 예전의 절터였다고 한다. 군청을 세울 당시 주변에서 수많은 기와 파편이 나왔을 뿐 아니라 이곳이 절터였다는 구전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도 1호선이 마을을 지나갔다. 현재 단골마트-현대오토바이-읍사무소-서울약국-옥천식당-무안교회 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현재 서울약국 앞 농약가게 있는 자리가 버스정류장이었다. 당시에는 전남여객 한 회사의 버스만 다녔다.

마을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군청 앞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무안읍 내에서 가장 발전이 안 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지로 40여 년 전의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또한 폐가도 10호가 넘을 정도로 마을이 황폐해 있다. 도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리고 군청 앞에 있으면서도 개발이 되지 않는 이유를 주민들은 여러 가지로 진단했다.

첫째는 정치인들의 관심이 없었고 둘째는 사회기반 시설의 미비를 들었으며 셋째는 주민들의 비협조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현재 백악관 모텔이 있는 자리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걸판지게 당산제를 지내기도 했던 이 나무는 나무 수형도 잘 잡혀져 있어 여름이면 읍내 주민 모두가 나무 아래에서 여름을 보낼 정도로 넉넉했던 나무였다. 주변에 샘도 있어서 주민들의 중요한 생활근거지가 됐으며 한국전쟁 때는 야경꾼의 초소가 있었다.

현재 황토클리닉이 들어설 자리를 매물머리라 했다. 황토클리닉은 정부의 소도읍 육성 협약체결 사업으로 2010년 7월부터 무안읍 성동리 여트물 일대에 개발면적 8만4천467㎡에 실시용역을 마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주변엔 터미널 부지로 예정된 3000여평의 땅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매물머리에서 고절리 쪽으로 가는 쪽에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국전쟁 때 좌익 관련 사람들을 집단으로 매장하기도 했다. 또한 용산 마을 바윗등이라 부르는 곳에서도 한국전쟁 때 집단으로 매장했던 지역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문 밖 용산 마을에서부터 중들(중평)을 지나 닭삯골을 거쳐 차밭머리까지 울창하게 우거진 숲띠가 있었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무안이 쥐 형국이고 오리정(개설피) 마을이 고양이 형국이어서 쥐가 마음껏 활동하려면 고양이에게 보이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보진압풍수이다. 지금은 개발로 예전의 숲은 찾아 볼 수 없으나 주민들의 의식 속에는 생생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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