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무안갯벌의 열 두 달‘갯것들’-⑥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 생태·문화자원을 찾아서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무안갯벌의 열 두달’이란 주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의 무안지역 연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해 현장 취재를 격주간으로 20여회에 거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서렁기’는 ‘칠게’를 부르는 우리 지역 이름

▲ 서해안 갯벌에서 관찰되는 칠게집단

‘서렁기’란 칠게를 우리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농게는‘꽂기’, 칠게는‘서렁기’, 민꽃게는‘독기’라고 부른다.

▲ 간장에 갖은 양념을 한 칠게장
아주 오래전 SBS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촬영팀들이 현지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 편집 작업을 하는데 궁금한 것이 있다는 거다. 주민들이 말끝마다‘서렁기, 서렁기’라고 이야기하는데 도대체‘서렁기’가 뭐냐고 물었다. 순간, 우리네 아낙네들의 입에서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를 해석하고 있을 서울사람들의 곤욕스러운 모습이 생각나 베시시 웃음이 나온다.

‘서렁기’란 칠게를 우리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농게는‘꽂기’, 칠게는‘서렁기’, 민꽃게는‘독기’라고 부른다. 누구는‘학명’이 칠게라고 하는데 엄밀하게 틀린 말이다. 칠게는‘학명’이 아니고‘국명’이다. 칠게의 학명(scientific name)은‘Macrophthalmus japonicus ’이다. 학명은 라틴어나 라틴어화한 말로만 나타낸다. 라틴어가 이미 죽어버린 언어(死語)이기 때문에 다른 변용이 없어 전세계에서 특정 종을 지칭하는데 쓰기로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 낙지 주낙 미끼로 쓰이는 칠게
이제 완연한 봄이다. 추운 겨울 갯벌 깊숙한 구멍에서 나온 칠게들도 덩달아 봄볕을 즐긴다. 짙은 색의 몽뚱아리에 비해 집게발은 푸른 빛을 띤 밝은 색이다. 칠게들이 집단을 이루어 따뜻한 햇볕을 향해 해바라기 하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한 생명체로서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마치 들어 올린 집게발을 통해 봄의 따뜻한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기세다. 칠게의 또 다른 특징은 긴 눈자루를 가진 점이다. 몸통의 윗부분에 두 개의 눈자루가 있고, 자루의 끝에 눈이 달려있다. 그럼 칠게의 눈은 왜 이런 모습으로 진화해 왔을까? 구멍 밖의 천적들 위험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이다. 구멍 안에, 혹은 얕은 물속에 안정적으로 몸을 숨기고도 바깥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잠수함의 잠망경이 연상된다.

칠게는 서해안 갯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종으로 개체수도 가장 많은 종이다. 칠게는 펄갯벌을 선호한다. 미세한 입자로 구성된 펄로 이루어진 갯벌은 모래갯벌이나 혼합갯벌과는 달리 우리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발이 빠지는 곳이다. 하지만 칠게에게는 최적의 서식지이다.

▲ 칠게 잡는 PVC 통발
칠게를 유심히 관찰하면 참 부지런하다. 두 집게발을 움직여 끊임없이 갯벌표면을 긁어다가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칠게의 양쪽 집게발은 안쪽으로 휘어 마치 숟가락처럼 갯벌위의 퇴적물을 떠먹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럼 칠게는 펄을 먹는 것일까? 아니다. 펄 위에 퇴적된 유기물이나 규조류 따위를 먹는다. 유기물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할 수 있는데, 칠게들이 유기물을 제거하므로 결국 바닷물 오염을 막게 된다. 갯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 중에‘해수정화의 기능’이라는 것이 바로 갯벌생물들의 활발한 먹이활동 때문에 나타난 효과다.

칠게는 낙지에게 좋은 먹이감이다. 낙지가 치마(머리와 다리 사이의 폭넓은 부분)로 칠게를 감싸 그대로 먹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 낙지주낙이다. 주낙에 사용할 미끼 때문에도 칠게잡이는 연중 성행한다.

봄, 가을 우리지역의 갯벌에 날아드는 나그네새인 도요새들도 칠게를 좋아한다. 마도요가 긴 부리를 이용해 구멍 속에 숨은 칠게를 꺼내 다리를 떼어내고 몸통만 삼키는 모습을 한번쯤은 보셨을 터이다.

칠게를 좋아하는 것은 낙지와 마도요만은 아니다. 사람들도 칠게를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간장에 담아 통째로 먹거나, 칠게를 분쇄해 젓갈처럼 먹기도 한다. 때문에 칠게는 이래저래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간장에 갖은 양념을 넣은 게장은 kg당 15,000원, 갈아서 판매하는 게장은 2만원이다. 낙지주낙 미끼용으로 이용되는 살아있는 칠게는 10kg 당 8만원을 호가한다. 그래서 칠게를 잡으려는 욕심이 과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200mm의 PVC 관을 세로로 절단해 갯벌에 묻어 두고 칠게들이 함정어구에 빠지도록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갯벌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든 종을 잡아들이는 포악한 채취도구이다. 마침 지역주민들도 이 함정어구가 갯벌을 건강하게 만드는 칠게들과 갯벌 생물들에게 치명적임을 알기에 즉각 대처해 철거한 바 있다. 제발 눈앞의 이익 때문에 지속가능한 갯벌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