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무안갯벌의 열 두 달‘갯것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 생태·문화자원을 찾아서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무안갯벌의 열 두달’이란 주제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의 무안지역 연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해 현장 취재를 격주간으로 20여회에 거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1970년대 김 한톳 값은 땅 한평 값과 같았다”

조선 인조 18년(1640년) 광양군 태인도에 김여익이라는 어부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지주를 세워 처음으로 양식했다. 그 후 광양 김은 진상되어 왕이 맛을 보게 되었는데, 이 음식의 이름을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한 신하가 “광양 땅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라고 하자 왕은 “앞으로 이 바다풀을 ‘김’이라 부르도록 하라”고 해 그때부터 김이 되었다고 한다.

현대 김양식법 선구자-청계면 복길리

현대 김양식법 선구자-청계면 복길리

이본조·인공채묘·피아노식 채취기…  복길리가 최초
김은 굴, 미역과 더불어 양식업의 3대 품목으로 연간 1억속 정도 생산되고, 생산액은 5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전체 어획고의 10%를 차지하는 셈이다.

김을 주로 이용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정도이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해조류를 바다쓰레기라는 의미로 seaweed라고 부르며 먹을 줄 몰랐다. 하지만, 해조류 음식이 건강식품으로 제대로 인정을 받으면서 이제는 sea vegetable(바다야채)라고 부르며 즐기기 시작한다. 특히 김은 서구인들에게도 매력적인 음식이 되고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광양은 한국의 김시식지(始殖地)이다. 조선 인조18년(1640년) 광양군 태인도에 김여익이라는 어부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지주를 세워 처음으로 양식하였다는 기록 때문이다. 그 후 광양 김은 진상되어 왕이 맛을 보게 되었는데, 이 음식의 이름을 물어도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한 신하가 “광양 땅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라고 하자 왕은 “앞으로 이 바다풀을 김이라 부르도록 하라”고 해 그때부터 김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김을 최초로 양식한 곳이 광양만이라면, 무안군에서 가장 먼저 김양식을 한 곳은 청계면 복길리 앞 바다이다. 1960년대 중반이니 아직 신안군으로 분군되기 전이다. 복길리 앞 바다가 압해도와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 탓에 압해도 송공리의 김양식 기술이 자연스레 청계만으로 도입되었다.

이본조·인공채묘·피아노식 채취기…  복길리가 최초

▲ 복길리 이재석씨(73)
복길리는 무안 최초의 김양식장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김양식 역사에서 획기적인 기록을 3가지나 더 가지고 있다.

1960년대까지는 죽홍이라는 이름으로 대나무를 쪼갠 발에 김이 붙게 만든 방식이 사용되었다. 1970년부터는 (주)남양어망에서 개발한 망홍(김발)을 지주 한 개에 매달아 두는 일본조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여기서 더 발전된 형태가 길이 40m의 망홍을 두 개씩의 지주에 고정하는 이본조방식이다. 복길리 이재석(73세)씨는 당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조기를 잡던 폐그물을 잘라서 이본조에 설치할 망홍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지주식 김양식장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본조 방식이 1975년 경 복길리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 인공채묘 기술도 복길리가 수산진흥원보다 먼저 성공해 전남도 전체에 분양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채취선에 설치된 일명‘피아노식 채취기’도 복길리에서 최초로 고안되고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김의 본고장인 완도에서도 김양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복길리를 찾았다. 당시 이곳에서 기술을 배운 이들이 지금은 무안 해제나 영광, 더 나아가 전북이나 충청도로 계속 김양식장을 확대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군산수산대 학생들도 복길리에 마련된 공동합숙소에 머물며 각종 김양식 기술을 배워갔다. 복길리가 한국 김양식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온 셈이다.

▲ 해제 백학마을 김 이식작업
하지만,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이본조의 확대와 인공채묘번식, 채취기의 발달은 대량 생산을 가져와 김 가격을 떨어뜨린다. 1970년대 김 한 톳(100장) 값은 5∼6천원으로, 당시 시세로 청계면 노른자위 땅 한 평 값과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자동김 뜨는 기계가 김을 생산해 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지폐를 찍어내는 기계라고 불렀다. 김 한 장, 한 장이 그만큼 귀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 한 장을 네 조각으로 나눠 먹었는지, 8개 조각으로 나눴는지, 아니면 아예 16개 조각으로 나눠 먹었는지가 가정 형편을 충분히 대변해 줄 수 있었다.

요즘에는 김생산자들도 마른김 생산보다는 물김으로 판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각종 수수료와 비용을 떼는 것 보다 물김 판매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김으로는 초김이나 김국을 만들어 먹기 좋다. ‘김 한 장에 달걀하나’라는 말처럼 김에는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아이들에게도 좋다. 요즘 조미김을 사 먹는 경우가 많은데, 마른김을 사서 기름을 바르지 않고 그냥 구워 간장에 찍어 드셔 보시라. 그래야 김 그대로의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으니까.

낭만의 포구, 복길바다를 벗어나며 이곳에도 김시배지와 같은 역사를 바꾼 기념물 하나 정도 남겨지길 기대해 본다.

■해제‘친환경 지주식 김’

현재 무안군 해제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지주식 김은 전통재래방법으로 간석지에 말뚝을 박은 뒤 김발을 매달아 충분한 햇볕에 건조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수확시기가 다소 늦지만 청정바다와 맑은 햇살, 해풍의 맛을 그대로 간직해 향이 뛰어난 게 특징으로 도시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무안군은‘친환경 지주식 김’생산을 위해 정부시책인 김 양식 구조조정에 맞춰 김 어장의 밀집양식 예방 차원으로 ha당 시설량을 18책(1책 세로 2.2m x 가로 40m)으로 제한해 현재 1만8,475책을 시설했다.‘친환경 지주식 김’은 4월까지 총 184만7천 속이 생산돼 64억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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