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무안갯벌의 열 두 달‘갯것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 생태·문화자원을 찾아서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과 공동으로‘무안갯벌의 열 두달’이란 주제로 무안지역 연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 대해 현장 취재 연재한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김경완 연구원이 르포로 현장 주민들의 삶과 목소리를 직접 채록해 격주간(2011년 1월1일부터 총 20여회)으로 연재되는‘무안갯벌의 열 두 달’은 계절별로 가장 대표적인 생물(또는 주제) 한가지씩을 정해 지역주민들이 그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하는지를 알아본다. 이를 위해 직접 주민과 동행해 배를 타거나 갯벌 위를 걸으며‘갯것’들의 생태를 관찰 채취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인터뷰한다. 아울러 전문가 인터뷰와 문헌자료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토착지식을 반영해 체계적이며 쉽게 읽을 수 있게 기록해 나감은 물론 채취방법, 채취도구, 생태적인 특징과 경제적 판로 및 파급효과 그리고 문화적 의미까지 파악해 이들 내용이 모두 스토리텔링의 자원으로 활용 가능토록 자료화 하고자 한다.

겨울의 경우 감태, 석화, 김, 숭어 등 생물이나 풍어제, 당산제 등을 주제로 다루고, 봄에는 쭈꾸미, 농게, 칠게, 농어, 바지락, 여름에는 패총, 짱뚱어, 쏙, 갯벌체험, 피뿔고동, 가을에는 낙지, 전어, 꽃게, 사구(해변) 등을 계절별로 맞추어 현장 르포 취재 연재한다.(편집자주)

“어부의 얼굴은 검지만, 굴을 먹은 어부의 딸 얼굴은 하얗다”

“어부의 얼굴은 검지만, 굴을 먹은 어부의 딸 얼굴은 하얗다”

12월 22일 동짓날 현경초등학교 해운분교 전교생 10명이 무안갯벌생태센터를 찾았다.

현장에서 갯벌체험을 맡은 목포대 서총현 박사가“(농게가 파놓은 구멍을 가리키며) 여기‘굴’이 많이 있죠?”라고 묻자 아이들의 대답은 엉뚱했다.

“어디 굴이 있어요. 하나도 없는데...”. 선생님은 게 구멍을‘굴’로 지칭했다. 하지만, 갯바닥에 익숙한 아이들은‘굴’이라는 소리에‘꿀(석화)’을 먼저 떠 올렸기 때문에 나타난 해프닝이었다. 아이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어려서부터 굴에 대해 듣고, 맛보며 자란 탓이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처럼 무안사람들에‘굴’은 잊을 수 없는 맛과 기억을 가진 소중한 갯벌자원이다.

▲ 굴 까는 기구 '조새'
12월 기온으로 30년만의 추위가 밀려든 성탄연휴가 끝난 2010년 12월 27일. 그동안 움츠렸던 갯마을 여성들이 일제히‘조새’(굴까는 도구)와‘구덕’(대나무로 만든 바구리로 어깨에 둘러맨다)을 들고 갯벌로 나섰다. 물때는 조금 전날이라 긴 시간 작업을 하기에는 여의치 않지만 각자의 사연 때문에 추위를 이겨내고 양식장으로 나섰다.

현경면 월두의 양춘임(74) 할머니는 부산과 대구의 딸에게 굴을 보내기 위해, 두동의 전질복(73) 할머니는 영광에서 주문한 물량을 대기 위해서다. 소당섬 주위의 굴양식장은 폐류양식으로 허가가 난 곳으로 모두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미 어촌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개인이 관리하고 이용하던 양식장이 있었고, 나중에 수산업법에 의한 면허제도가 등장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갯벌은 넓지만 그곳에는 엄밀한 경계가 있고, 그 경계로 개인이 굴양식장을 소유, 관리하고 있다. 현재 무안 연안에는 총 520ha의 굴 양식장이 있으며 일부(건홍식 52ha, 수하식 5ha)를 제외하고는 모두 투석식 굴 양식장이다.

굴양식은 굴 유생이 조류에 떠다니다가 딱딱한 바위나 굴껍데기(폐각)에 붙어 자라는 성질을 이용한 다. 만조에 배를 띄워 머릿돌보다 큰 돌들을 자신이 소유한 바다에 던져두고 그 돌에 굴유생이 붙어 자라게 하는 것이 굴양식장이다. 이때 필요한 돌들을 구하기 위해 연안의 바위를 깨뜨린 경우가 많았다. 월두마을의 경우도‘장군바위’나‘요강바위’가 있었지만, 남포(다이나마이트)를 이용해 터뜨려 양식장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생산된 굴은 비록 양식이라고 하지만 먹이를 주거나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최초의 굴양식 기록은 1450년

굴양식이 이렇게 쉬웠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 굴 양식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의해 1450년 경으로 확인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1900년 이후부터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는 1969년부터 굴 수하식 양식이 본격화 되었는데, 6월에 조가비(굴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로프에 끼워 굴 유생을 붙여 수심이 깊은 곳에서 로프를 이용하거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에 매달아 양식을 하여 패류 중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았다. 최근 서해안에서는 갯벌에 말목을 박고 그 위의 그물속에 굴 종패를 넣어 키우는 개체굴 양식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굴은 예로부터‘바다의 우유’라고 알려질 정도로 영양식이었다. 그래서‘어부의 얼굴은 검지만, 굴을 먹은 어부의 딸 얼굴은 하얗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굴의 효능 때문이다. 실제로 굴에는 글리코겐, 비타민, 단백질이 풍부해 예로부터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영양식으로 이용되어 왔다.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하지만 찬바람을 이겨내며 굴을 채취하는 것은 곤혹스럽다. 그래서 도시로 나가 살고있는 자식들은 고향의 어머니께 굴 까러 나가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추운데서 고생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두동에서 나온 어머니들은 한결같이‘자식들이 알면 큰일난다’며 사진 찍히는 것을 걱정하셨다.

굴까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열아홉살에 시집와 처음 굴을 까러 나갔던 고연녀(65) 어머니가“그놈의 꿀들 다 고라 갖고(썩어서), 강물에 떠내려 갔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하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면서 굴까는 재미를 느끼고, 굴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굴을 까는 동안 갯벌은 여성들만의 소통의 공간이자, 동시에 현금을 가져 다 주는 은행통장이었다.

이날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굴 채취에 참여한 여성들은 보통 6∼8kg의 굴을 채취해 kg당 1만원의 현금을 받고 굴을 건넸다. 비록 점심을 건너뛰고 찬바람을 맞았지만 60대, 70대 여성들까지 차별 없이 현금을 벌 수 있는 곳이 이곳 갯벌 말고 어디 있을까? 건강한 갯벌이 우리 곁에 있어 이렇게 풍요롭게 행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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