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 ‘스토리’가 관광자원이다

垂楊里는 현경면 소재지에서 해제면 쪽으로 4㎞ 가량 떨어져 있다. 해제 쪽으로 현경로를 타고 가다 봉대산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만날 수 있는 지역으로 2003년 팔방미인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은 갯벌 체험과 농산물 수확 체험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봉대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함해만이 펼쳐져 있고 지형상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농경지가 많다. 조선조에서는 함평현 다경면에 포함되었다. 이후 목포부 다경면의 지역으로 수양나무가 많아 수양촌이라 하였는데 1914년 석북리 두모동 용정동 일부를 병합하여 무안군 현경면에 편입시켰다. 수양촌 석북 두동 등 세 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쌀을 세는 말 되 홉의 의미를 지닌 마을

두동은 수양3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죽산 안씨 동족마을이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문씨와 이씨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세대도 살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흔적도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 들어온 성씨가 죽산 안씨다. 경기도 파주에서 세거하던 죽산 안씨 중 일부가 임진왜란을 피해 충북 영동을 거쳐 이 마을로 들어왔다. 최초 입향자는 안정후(1564-1618, 자-수동, 호-구정)이다. 입향조는 삼강록에 등재될 정도로 효행이 지극하였다. 또한 마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수원 백씨는 180여년 전에 장흥에서 함평 손불로 그리고 현경면 양학리를 거쳐 이 마을로 들어왔다.

斗洞이란 지명의 유래는 지형이 마치 쌀을 세는 말[斗]과 같이 생겼다 해서 비롯됐다. 쌀을 세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홉인데 이 10홉이 모여 한 되[升]가 되고 10되가 모여 한 말[斗]이 되고 10말이 모여 한 섬이 된다. 마을 앞에는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모두 쌀을 세는 단위와 관계가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즉 소스랑섬이 소두말을 가리키고 되섬{升島]이 되를 가리키고 소스랑 섬 앞의 조그만 섬을 홉이라 한다. 두동은 말[斗]을 가리킨다. 한 주민의 말처럼 섬[石]을 가리키는 지역이 없어 마을에 부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푸념은 심상치 않게 들린다.

마을유래지에는‘두사춘이란 사람이 두동에 와서 춤을 추었다 해서‘斗舞洞’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두사춘은 명나라 병사의 이름인데 신안군 지은면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또한 두무동이라 했는데 원래는 두모동이다. 이런 사실은 1789년에 나온 호구총수에도 1912년의 자료나 1917년의 자료에도 모두 두모동으로 나온다. 또한 마을 주민들이 간직하고 있는 각종 자료에서도 두모동으로 나온다.

■세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는 마을

▲ 두동마을 동구비
이 마을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앞에 세워진 洞口碑다. 이 비는 마을의 입향조는 누구이며 어떤 성씨들이 살고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919년에 세워졌는데 입향조는 죽산안씨 안정후이며 진주강씨 광산김씨 김해김씨 수원백씨 파주윤씨 전주이씨 장수황씨 등 9성씨가 모여 화목하게 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두 번째는 주변 마을에서 말하는 가갸 거겨의 두동마을이다. 이는 주변에서 이 마을을 지칭할 때 부르는 호칭인데 이곳에서 글자를 배운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 일제 강점기 때 학교가 없던 시절에 이 마을의 주민이 크게 서당을 열어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가갸 거겨 한글을 가르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세 번째는 당산제이다. 지금은 없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마을회관 앞에는 두 아름이 넘는 전나무가 있어 훌륭한 당산목이 되었다. 주민들은 이 당산나무 아래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정오에 당산제를 지냈다.

때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닌 일종의 성인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주민들 중 만 17세가 된 사람은 당산나무에 진세술(성인으로 인정 받는 술)을 올려 성인이 되었음을 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거친 사람은 품앗이 할 때나 품삯을 정할 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또한 마을에서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거나 패륜을 저지른 사람을 데려와 덕석말이로 징치하기도 했다. 이런 행사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마을 대대로 내려 온 행사라 한다.

마을의 또 다른 문화로는 독특한 세배 법이다. 어느 마을에서나 설날에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니는데 이 마을의 세배 법은 좀 독특했다.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가는데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음식상을 차려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 상을 어른들에게 대접하고 오는 것이 관례였다.

마을에는 두 개의 샘이 있다. 큰샘과 약샘으로 불리는 샘이다. 이중 약샘은 용진개 부근에 있는데 석간수로써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대단히 효험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여름에는 시원해 피서의 한 방법으로 이 물로 등목을 하면 여름을 쉽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 1940년에 받은 개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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