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새밭 귀퉁이 접시꽃은 수문장(守門將)

“장독간에 접시꽃은/ 어제 온 새각시인가/ 분홍치마 휩싸 쥐고/ 나를 보고 방긋방긋”아주 오래 전 아이들이 불렀던‘접시꽃’이라는 동요이다. 빛깔은 화려한 것 같지만 단아하고 천박해 보이지 않는 꽃이 접시꽃으로 그리 두드러진 곳이 아닌 데서 자라나 평범한 아름다움이 서민들의 정서에 와 닿아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받아온 꽃이라 할 수 있다. 접시꽃은 접시처럼 꽃판이 크고 단조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조금은 떨어져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풍성하게 보이는 그런 꽃이다.

곧추 선 줄기마다 수십 개의 꽃망울들과 활짝 핀 꽃들이 함께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경북 안동지방 민요에선“경단 수단 맺힌 꽃이 좋다/ 도리 납작 접시꽃이 좋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 꽃은 맨 아래서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피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렇게 올곧고 의젓하고 여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선비 집 정원에 접시꽃을 심어 가꾸었던 이유가 벼슬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해서 위로 승진한다는 의미로 낙하산이나 벼락출세가 아닌 자연의 순리, 명예로운 승진, 번영을 상징한다 하여‘층층화’라고도 불렀다.

꽃도 나이에 따라 좋아하는 성향이 있듯이 접시꽃은 젊은 세대들보다는 곰삭은 세월의 깊이를 아는 우리네 할머니들이 좋아하셨다. 할머니들은 굳이 꽃밭을 만들지 않고 남새밭 귀퉁이나 울타리, 장꽝(장독대의 사투리) 주변에다 씨를 뿌려 사람들 눈에 거의 띄지 않게 애지중지 가꾸었다. 그리고 하얀 꽃은 사발을 닮았다고 해서‘사발꽃’이라 불렀다. 사발은 먹는 그릇의 일종으로 우리 조상들은 밥 먹는 그릇을 귀히 여겼기에 그리 불렀었고, 특히 접시꽃 중에서도 흰 접시꽃이 귀하게 여겨진 것은 갖가지 부인병에 특효가 있어 집안에서 가장 나이든 할머니가 소중하게 가꾸었다.

접시꽃은 아욱과로 두해살이 초본이다. 꽃말은 풍요다산열렬한 사랑평안대망이다. 접시꽃은 중국이 원산지이며 전국의 빈터 각지에서 자란다. 개화는 6∼9월까지 흰색, 분홍색, 붉은색, 자주색 또는 노란색 등의 홑꽃이나 겹꽃이 피고, 높이가 큰 것은 3m이상 까지도 자라며 9월부터 열매가 익는다. 별칭으로는 촉규화(蜀葵花) 촉계화(蜀季花) 덕두화(德頭花) 숙계화(熟季花) 단오금(端午錦) 설기화(舌基花) 서국화접중화라고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서울은 어숭화, 평안도는 둑두화, 삼남지방(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통칭)은 접시꽃이라 불렀다.

각 부위에 따른 명칭을 보면 꽃은 촉규화(蜀葵花), 건조한 뿌리는 촉규근(蜀葵根), 잎과 줄기는 촉규묘(蜀葵苗), 종자는 촉규자(蜀葵子)라 하고 모든 부위는 약용으로 다양하게 쓰이며, 줄기껍질은 매우 질겨 길쌈이나 노끈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촉규근은 청열(淸熱, 차고 서늘한 성질의 약을 써서 열증(熱症)을 제거함), 이뇨(利尿, 오줌을 잘 나오게 함), 배농(排膿, 곪은 곳을 째거나 따서 고름을 빼냄), 임병(淋病, 임질), 백대하(白帶下), 요혈(尿血, 오줌에 피가 섞여 나오는 병), 토혈(吐血, 위나 식도 따위의 질환으로 피를 토함), 창종(瘡腫, 피부에 생기는 온갖 부스럼을 통칭하는 말) 치료에 사용한다. 촉규묘는 하리(下痢, 이질), 금창(金瘡, 칼창화살 따위로 생긴 상처)에 쓰이고, 촉규화는 소아풍진(小兒風疹, 홍역과 비슷한 발진성 급성 피부 전염병의 하나) 치료에 사용된다.

민간에서는 신경통, 위장병, 변비 치료에 촉규근을 달여 복용하였다. 특히 흰 꽃은 부인병인 대하증이나 하복부 냉증에 사용되었다. 동의보감에 보면 산모가 난산(難産)일 경우에 황촉규자(黃蜀葵子) 가루를 처방하여 복용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접시꽃 약성(藥性) 중 하나가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인병엔 효험이 있지만 몸이 찬 여성에게는 권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이처럼 시골 길가나 대문밖에 꼿꼿이 서있던 접시꽃이 만병통치약인 것을 무심히 그냥 지나쳐 버린 게 마냥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접시꽃도 온갖 꽃들이 뽐내고 있는 정원 속으로 들어오고도 싶을 텐데 한결같이 대문 밖 길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우직스럽기만 하다. 그런 우직함이 전설에도 담겨있으니 약효와 함께 높이 살만 하다.

아주 옛날 꽃나라 화왕(花王)이 궁궐 뜰에다 세상 모든 꽃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기르는 가장 큰 어화원(御花園)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화왕은“천하의 모든 꽃들은 나의 어화원으로 모이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화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세상의 모든 꽃들은 어화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서천 서역국 어느 곳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세상의 모든 꽃을 모아 심어 가꾸는 꽃감관이 있었다. 이곳은 갖가지 종류의 꽃들이 철따라 아름답게 피어 산과 들 뿐만이 아닌 온 고을이 모두가 꽃밭이었다. 꽃감관은 그 꽃들의 색깔과 모양과 향기가 더 좋아지도록 온갖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 돌봐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도 어화원에 관한 소문이 나돌았다. 꽃들은 그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꽃감관의 허락 없이는 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꽃감관이 계명산 신령님을 만나러 가고 없었다. 마침 이 틈을 타 가고 싶었던 어화원으로 가겠다고 샛노란 금매화가 먼저 입을 여니 연보라색 용담꽃도, 하얀색 금강초롱도, 진홍빛 개불란도 모두가 덩달아 너도나도 줄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화원을 향해 가버렸다.

며칠 후 돌아 온 꽃감관은 텅빈 산과 들을 보고 깜짝 놀라 헐레벌떡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꽃들을 찾았다. 딸랑딸랑 고운 소리 은방울꽃, 송이송이 곱게 웃는 보랏빛 제비꽃, 백일기도의 뜨거운 정성으로 핀 백일홍, 외딴 암자에서 스님을 기다리는 동자꽃, 사랑의 정표로 선녀가 주고 간 옥잠화, 부서져 버린 뼈를 모아 주는 뼈살이꽃, 삭아 없어진 살을 붙여 주는 살살이꽃, 끊어졌던 숨결을 이어 주는 숨살이꽃 등등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꽃감관은 몹시 슬퍼하며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 때 어디선가“감관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여기 있어요.”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나가보니 대문 밖 울타리 밑에서 접시꽃이 방긋이 웃고 있었다. 너무도 반가웠다. 그간의 사정을 들은 꽃감관은 떠나지 않고 혼자 남아서 집을 지켜 준 접시꽃이 참으로 고마웠다. 꽃감관은 모두가 떠나 버린 곳에 홀로 충직하고 믿음직스럽게 남아있는 접시꽃에 감복하여 그때부터 대문을 지키는 꽃으로 삼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전설을 듣고 보니 접시꽃이야 말로 수문장(守門將)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아무도 눈여겨보지도 않은 곳에서 꿋꿋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의리 있는 꽃이라는 생각에 문득 촉규가(蜀葵歌)를 아니 부를 수 없다.

“이 꽃이 비록 천품이기는 하나(此花雖品賤)/ 나는 유독 감격한 마음이 많다오(我獨多感激)/ 그대는 보았나 춘풍에 화려함 과시할 제(君看繁麗誇春風)/ 화려한 자리 미인들이 다투어 끊는 것을(錦筵雲爭攀折)/ 누가 알랴 한 번 웃어 아리따움 뽐내고(誰知一笑足然)/ 다시 깊은 동산 그윽한 곳에 부쳐 있는 걸(更在深園寄幽絶)/ 내가 이 노래를 하는 게 어찌 미쳐서이랴(我今歌此豈狂哉)/ 그 발 호위하듯 내 생명 호위하고파 일세(願衛吾生如衛足)/ 비록 작은 담장 그늘에서 헛되이 늙더라도(雖然虛老小牆陰)/ 절로 마음 기울여 끝내 태양을 향하리(自是傾心向暘谷)”

※조애령 교수의「식물이야기」는 이번 글을 끝으로 개인적 사정으로 마감됩니다. 독자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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