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염무구(無染無垢)는 연봉(蓮峰)에 머물고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口裡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裡無瞋是眞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이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은 문수동자가 당나라 무착선사(無着禪師)에게 일러준 것이라고 한다. 티 없이 깨끗하고 진실한 부처의 마음과 같음이 무염무구(無染無垢)일진데 사월 초파일 연등에 달아둔 수많은 중생들의 그 마음이 이 무렵이면 연못가 작은 연봉(蓮峰)으로 피어나 한결같은 부처의 마음으로 머물고 싶을 때이다.

연꽃하면 연상되는 것은 불가(佛家)의 상징이자 그 고귀함이 청정무구(淸淨無垢)이다.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는 연꽃이 수면위로 꽃봉오리를 보일 때면 마치 합장(合掌)을 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 같아 모든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불가에서는 연꽃이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연꽃은 윤회(輪廻)와 환생(還生)이라는 내재된 의미가 있어 심청전에서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가 연꽃으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을 땐 환생과 중생들의 모든 소망을 연꽃으로 함축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연꽃은 불가의 교리를 상징하는 만다라(曼陀羅)로 표상되고 있다. 많은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극락세계의 꽃으로 극락세계를 연방(蓮邦)이라고 부른다.

부처가 앉아 있는 대좌를 연꽃으로 조각한다거나, 아미타불의 정토(淨土)에 왕생하는 사람은 모두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고 하여 연태(蓮胎)라고 한다. 부처의 고향 인도에서는 백련(白蓮)홍련(紅蓮)청련(靑蓮)이 피는데 백련은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무구를 나타내며,‘천수경’에 나오는“옴 마니 반메 홈”의‘반메’는 홍련으로 매우 귀하고 소중한 꽃으로 인식되고 있고, 청련(靑蓮)의 잎은 부처님의 지혜로운 눈에 비유되고 있다.

연꽃에는 각 부위마다 불가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활짝 핀 연꽃잎은 우주(宇宙) 그 자체를 상징하고, 줄기는 우주의 축(軸)을 뜻한다. 연실에는 9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는 9품(九品, 극락에 다시 태어날 때의 아홉 등급)을 말하고, 3개의 연뿌리는 불법승(佛法僧)으로 부처, 교법, 중을 아울러 이르는 삼보(三寶)를 뜻하며, 연꽃 씨는 천년이 되어도 심으면 발아하여 꽃을 피운다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연꽃과 불가(佛家)는 불가분의 관계임이 틀림없다.

옛날 페르시아에서는 꽃의 지배자는 연꽃이라 할 정도로 격이 높았고, 정결하다는 의미와 세속적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꽃 중의 군자(君子)라는 칭호를 가졌다. 홍련(紅蓮)은 새색시 같이 상큼하고 백련(白蓮)은 아가씨 같이 청초하며 향기 또한 백련이 더 좋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연꽃이 씨를 많이 맺기 때문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여 그림건축물자수양탄자 등에 그려진 연꽃은 풍요를 상징하고, 부인의 의복 등에 그려진 연꽃은 다산을 나타냈다. 태몽으로 연꽃을 받으면 딸을 얻을 것이라 전해졌고, 이름에 쓰인 연(蓮)자는 남자의 경우 불제자를 의미하고, 여자는 청정무구의 기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연보(蓮步)는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기도 한다.

연(蓮)은 수련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생식물이다. 전국의 못이나 늪지에서 자라며 지리적으로는 중국, 시베리아, 인도, 일본에도 분포한다. 7~8월에 개화하며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연꽃, 연자, 연밥, 수단화(水丹花) 등의 별칭이 있다. 부위별 명칭은 열매를 연자(蓮子)연실(蓮實)석연자(石蓮子)라 하며, 꽃봉오리는 연화(蓮花), 연의 수술을 연수(蓮鬚), 뿌리줄기를 연근(蓮根), 뿌리줄기의 마디는 우절(藕節), 잎을 하엽(荷葉), 연의 성숙한 종자의 녹색의 배아를 연자심(蓮子心)이라 하는데 모든 부위는 약재로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야맹증에 연잎 2개를 소량의 감초뿌리와 함께 달여 하루 3회 나누어 복용하였고, 연잎을 인삼과 함께 달여 먹으면 폐를 돕는다고 하였으며, 연잎과 열매는 비타민 B1 결핍증에도 쓰였다. 연 씨는 만성장염이나 위염에 쓰이고, 연뿌리는 폐렴, 기관지천식, 설사, 강장약, 소화불량, 축농증에 쓰이며 코피가 날 때 연뿌리 즙을 솜에 묻혀 코를 막으면 멈춘다고 한다. 또한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어질어질한 심장병 증세에 연뿌리 즙을 공복에 100㎖씩 한 달 정도 복용을 하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옛 동의문헌에는 연술(수꽃술)이 콩팥을 보하고 머리털을 검게 하며 강정강장 효과가 있다고 사용하였다.

옛 선비들은 연꽃을 무척 좋아했다. 그 중 중국 북송의 유학자인 염계(濂溪) 주돈이(周敦, 1017∼1073)만큼 연꽃을 사랑한 이도 드물 것이다. 그의 애련설(愛蓮說)을 보면 선비가 연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담겨져 있기에 더욱 더 연(蓮)에 대한 애착이 있음을 알 수 있다.“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李)씨의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유독 연꽃만을 사랑한다. 그것은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어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망스럽지 아니하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君子)라고 본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水陸草木之花 可愛者 甚蕃하나 晉陶淵明이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牡丹하더니 予는 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妖하고 中通外直하고 不蔓不枝하고 香遠益淸하고 亭亭淨植하야 可遠觀而不可褻翫焉하노라. 予 謂菊은 花之隱逸者也요 牡丹은 花之富貴者也요 蓮은 花之君子者也라하노라. 噫라 菊之愛는 陶後 鮮有聞하고 蓮之愛는 同予者 何人고 牡丹之愛는 宜乎衆矣니라.)”

애련설을 읊어보니 연꽃에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모두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청아한 한 송이 연꽃에 무심코 빠져드는 느낌이다. 어느덧 훌쩍 또 입추(立秋)가 되었다. “초당의 깊은 곳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노라니/ 구름 그림자 하늘빛이 작은 연못에 어우러지네./ 간밤에는 서풍이 풀 깍은 둑 위로 불더니/ 느즈막이 부는 선선한 바람이 연꽃 향을 훔치려 드네.(草堂深處踞胡牀/ 雲影天光共小塘/ 一夜西風吹地/ 晩偸入藕花香).”

슈만(R. A. Schumann, 1810∼1856)의 가곡 연꽃(Die Lotosblume)을 들으며 달빛 밝은 지난여름 무심코 담가둔 당신의 마음을 건지러 백련(白蓮) 향기 그득한 그때 그 연못으로 다시 가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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