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사모하는 정열의 꽃 해바라기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 해바라기들 새에 서서/ 나도 해바라기가 되려오/ 황금 사자 나룻/ 오만한 왕후의 몸매로/ 진종일 짝소리 없이/ 삼복의 염천을 노리고 서서/ 눈부시어 요요히 호접도 못 오는 백주!/ 한 점 회의도 감상도 용납치 않는/ 그 불령스런 의지의 바다의 한 분신이 되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해바라기 밭으로 가서/ 해바라기가 되어 섰으려오.”

청마(靑馬) 유치환의‘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라는 시이다. 꼿꼿하고 굽힐 줄 모르는 의지의 세계가 해바라기로 상징되어 삶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청마의 수작(秀作)이다.

해변가 넓은 들판에 탐스럽게 꽃을 피우고 서있는 노오란 해바라기는 푸른 물결 넘실대는 바다의 열기마저 삼켜 버리고 머리위 이글대는 태양빛을 받으며 수평선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그 정열의 기염(氣焰)을 토해내고 있다. 정열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이다.“조그만 액자에 화병을 그리고/ 해바라기를 담아놨구나/ 검붉은 탁자에 은은한 빛은/ 언제까지나 남아있겠지/ 그린님은 떠났어도/ 너는 아직 피어있구나/ 네 앞에서 땀 흘리던/ 그 사람은 알고 있겠지”가수 산울림이 불렀던‘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에서처럼 화병에 담아둔 해바라기를 그린 고호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여러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남겼다. 해바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태양에 접근하고자 했던 집념은 어쩜 그의 내면의 세계가 해바라기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해바라기는 곧 고호의 상징이자 대명사처럼 되었다. 마치 유치환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고호는‘해바라기’라는 그림으로써 강렬한 태양에 의한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 한 느낌마저 든다.

해바라기는 노란 꽃이 해를 향한다는 뜻이 담긴 향일성(向日性) 식물로 국화과에 속하며 일년생초본이다. 향일규(向日葵), 향일화(向日花), 조일화(朝日花), 규화(葵花), 일륜초(日輪草), 일회, 산자연이라고도 부른다. 원산지는 아메리카이며 8∼9월에 황색 꽃이 피며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해바라기의 잎은 향일규엽(向日葵葉), 종자를 향일규자(向日葵子)라고 하며, 뿌리를 향일규근(向日葵根)이라고 한다. 향일규엽(向日葵葉)은 다른 약재와 같이 달여서 복용하면 고혈압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향일규자(向日葵子)는 배농(排膿, 곪은 곳을 째거나 따서 고름을 빼냄)이나 혈리(血痢, 급성 전염병인 이질의 하나. 여름철에 많이 발생, 발열과 복통이 따르고 피와 곱이 섞인 대변을 누게 됨)에 효능이 있고, 식용이나 기름으로도 쓰이며, 민간에서는 류머티즘, 구풍(驅風), 해열 등에 쓰기도 한다. 향일규근(向日葵根)은 이변불통(二便不通, 대소변을 누지 못하는 증상), 타박상, 위장흉통(胃腸胸痛) 치료에 사용한다.

해바라기는 인류에게 유용한 식물로써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살짝 볶아서 소금을 뿌린 해바라기 씨를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새나 작은 동물의 사료로도 쓰이며, 씨를 빻아 만든 가루는 빵을 만들 때 부재료로도 사용된다. 해바라기 기름은 샴푸, 입술 보호제, 핸드크림, 바디로션, 유아용품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공업용 모터오일을 생산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해바라기 1ha 밭에서는 25∼50㎏의 꿀을 수확할 수 있으며, 수확하고 남은 해바라기 줄기는 43∼48%가 셀룰로오스로 이루어져 있어 셀룰로오스는 종이와 그 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해바라기의 남은 부분은 가축을 위한 저장 사료나 비료로 사용할 수가 있다.

해를 그리다 꽃이 됐다는 해바라기의 꽃말은 존경, 희망, 숭배, 동경, 기다림이다. 이 꽃에 얽힌 전설은 많으나 거의가 한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마냥 그 사람만 바라보다가 결국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꽃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중 하나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을 소개하자면 바다의 신에게는 그리디와 우고시아라는 두 딸이 있었다. 아버지는 두 딸에게“해가 진 뒤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만 연못에서 놀아야 한다. 그 밖의 시간에는 연못 속에서 나오면 안 된다.”라고 일러두었다. 그래서 이 두 딸은 연못에서 밤에만 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자매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어느덧 동쪽 산 위로 태양의 신 아폴론이 찬란한 빛을 비추었다. 두 자매는 난생 처음 보는 황홀한 광경이었다. 두 자매는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도 잊어버린 채 밝아져 오는 세상과 태양을 쳐다보게 된 것이었다. 아폴론은 두 자매를 발견하고는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빛을 더 환히 비추어 주었다. 두 자매는 아폴론의 미소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특히 언니인 그리디는 아폴론의 멋진 모습에 홀딱 반하여 그에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 그리디는 동생 우고시아가 아버지의 규율을 어기고 아침 해가 뜬 뒤에도 연못에서 놀았다고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둘째 딸 우고시아를 감옥에 가두었다. 동생이 감옥에 갇히자 언니 그리디는 아폴론의 환심을 더욱 더 사기 위해 해가 동쪽 하늘에 솟아오르면 황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쪽 하늘로 해가 지기까지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면서 서 있었다. 그렇게 아흐레 밤낮을 서 있었지만 아폴론은 그녀의 나쁜 마음을 알았기에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아폴론을 향한 그리디의 사랑은 간절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그리디는 그만 발이 땅에 뿌리박힌 채 한 포기의 꽃이 되고 말았다. 그 꽃이 바로 해바라기다.

어찌 보면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서 꽃을 피우는 해바라기가 한 곳만 바라보기에 일편단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그 심정은 짝사랑 내지는 가슴앓이 사랑이라고나 할까? 해가 지고 나면 고개 떨구고 있어야 하는 애처로운 신세는 또 그 누가 알아줄련지…….

1970년에 제작된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주연의 영화‘해바라기’가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지오반나는 남편을 찾아 헤매는데 그곳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들판으로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가 너무도 눈부시게 많이 피어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의 풍경과 함께 애절한 멜로디‘Loss Of Love’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면 애모(愛慕)와 처연함이 느껴진다. 오늘도 당신은 누군가의 해바라기가 되어 하염없이 태양이 떠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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