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메밀꽃은 달빛을 머금고

메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산(可山) 이효석 작품의‘메밀꽃 필 무렵’이다. 35세의 짧은 나이에 요절한 가산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봉평을 배경으로 이 작품을 썼다. 1936년 발표한 이 작품의 배경에서 보듯이 가산은 당시 메밀이 강원도 일대에 가장 많이 재배되었던 작물임을 착안하여 소설의 장면마다 하나의 산수화를 그리듯이 참으로 아름답게 메밀밭의 장면을 묘사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중략…….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이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나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소설의 주인공인 허생원이 젊은 날 봉평의 어느 물레방앗간에서 평생 잊지 못할 첫사랑의 그녀를 만나게 된 그날도 메밀꽃이 떡가루 뿌려 놓은 것 같은 한여름 달밤이었고, 장돌뱅이로 다 늙은 허생원이 다시 봉평에서 아들‘동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 그때도 하얀 메밀꽃이 만개한 어느 한여름이었다. 이렇게 메밀은 한여름 밤의 낭만과 인생의 인연을 연상케 한다.

메밀은 여뀌과로 일년생초본이다. 옥맥(玉麥), 삼각맥(三角麥), 교맥(蕎麥), 백면(白麵), 목맥(木麥)이라고도 부르며, 모(角)가 진 밀이라 해서 모밀, 뫼밀이라고도 하며, 사투리로는 메물, 미물, 며물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이며 우리나라에는 5∼6세기경 중국에서 식용작물(食用作物)로 들어 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재배가 이뤄졌으나 주로 강원도 산간 농가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특징으로는 예전엔 가뭄이 심하게 들게 되면 물을 댈 수 없는 논에는 땅을 파고 벼를 심어 열흘 안에 비가 오면 벼농사를 지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메밀을 대신해서 심을 정도로 추운 곳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예부터 흉년이지면 구황작물(救荒作物)로 활용했었다. 일본에서도 고려시대에 전파되었던 메밀을 서기 772년 가뭄에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개화시기는 7∼10월이며 흰색 혹은 연한 붉은 색의 꽃이 피고 10월경에는 열매가 익는다. 메밀꽃은 교화(喬花)라고도 부르는데 일반 꽃처럼‘피다’라고 하지 않고,‘메밀꽃이 일다’라고 한다. 이것은 파도가 일 때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 물거품)과 같다 하여‘물보라가 하얗게 부서지면서 파도가 일다’라는 표현과 같이하여‘메밀꽃이 일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메밀을 재료로 한 여러 가지 음식이 있는데 메밀에는 루틴이라는 성분이 있어 모세혈관의 투과성과 취약성이 높아진 질병에 쓰이는데 혈소판감소성 자반병, 독성 디프테리아, 성홍열 등의 치료에 쓰인다. 또한 고혈압, 뇌출혈 예방, 폐결핵, 폐출혈, 피가래 예방, 녹내장이 있을시 안압(眼壓)을 낮춰진다고 하며, 특히 메밀묵은 동맥경화증 예방 치료에 좋다고 한다.

본초강목에서는‘메밀은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훑어 내린다’고 하였다. 한방에서는 항염증, 독풀이, 열내림 등에 쓰기도 하고, 민간에서는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쓰이며, 간염을 앓을 때에는 메밀 죽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메밀은 찬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찬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거나 설사를 잘 하는 사람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충북 음성에 가면 메밀과 관련된 노동요가 전해지고 있다.“뒷집의 김도령/ 메밀 갈러 안 갈라나// 메밀 갈러 왜안가요/ 메밀간지 사흘 만에// 메밀밭에 구경 가니/ 잎이 동동 푸른잎새// 대야동동 붉은 대에/ 메밀꽃은 백꽃일세// 열매열매 검은 열매/ 다발다발 묶어내어// 바리바리 실어다가/ 도리깨로 두드리고…….”

이처럼 메밀 노래에도 나오는 것처럼 메밀꽃은 하얀 반면 메밀 줄기는 붉은 색이다. 왜 붉은 줄기인지 재밌는 전설 하나가 있다.

옛날 옛적 산속의 작은 집에 홀어머니가 오누이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5일장이 서는 봉평 장터를 나가야 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옥수수 팔아서 맛있는 것 사올 테니 누가 찾으면 함부로 대문은 열어 주지 말거라.”하면서 당부를 하고 산 고개 넘어 장터로 향했다.

장터로 가는 길에 어머니는 고갯마루를 넘어 봉평 뜰이 바라다 보이는 개울가에 앉아 쉬다가 그만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화를 입고 말았다. 단숨에 어미를 잡아먹은 욕심 많은 호랑이는 죽은 어미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오누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곤 오누이를 감쪽같이 속이고 집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오누이는 너무도 놀라 집 근처 우물가에 있는 버드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호랑이는 오누이를 쫓아와 어떻게 나무 위로 올라갔는지 물었다. 오누이는 이리저리 둘러 대다가 그만“도끼로 찍으며 올라왔다”고 얘기를 해버렸다. 어린 오누이는 호랑이가 나무 위로 올라오게 되자 하늘에 간절히 기도를 하게 되었고,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와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를 본 호랑이도 하늘에 기도를 하였더니 두레박이 내려와 이것을 타고 올라가던 중 과다 체중으로 그만 밧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호랑이가 떨어지면서 아래를 보니 냇물처럼 보이는 곳이 있기에 냅다 풍덩 몸을 던졌다. 몸을 던진 그곳은 다름 아닌‘냇물로 알고 바짓가랑이를 걷고 건넜다’는 메밀꽃 밭이였다. 하얀 메밀꽃 밭은 호랑이의 피로 붉게 물들게 되었고, 그때의 피가 지금까지 남아서‘메밀꽃 줄기는 붉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예전에야 배고프고 없을 때 메밀가루 빻아서 허기달래기 위해 먹었던 구황작물 이였다지만 요즘은 그 효능이 다양하게 나타남에 따라 건강과 미용에 좋은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이야 말로 메밀의 본 맛을 느껴 볼 수 있는 제철이라 할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달빛 밝은 창가에서 알알이 하얗게 맺힌 메밀꽃 밭에 뿌려둔 지난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한 여름 밤의 꿈속에서라도 아련한 옛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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