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가 김길태 사건으로 공분(公憤)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근 입적한‘무소유’법정스님의 짧은 유언장 2장‘남기는 말’과‘상좌들 보아라’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면서 우리사회의 선과 악의 극명함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남기는 말’에는“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

‘상좌들 보아라’는 인연이 있어 신뢰와 믿음으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한다. 괴팍한 나의 성품으로 남긴 상처들은 마지막 여행길에 모두 거두어가려 하니 무심한 강물에 흘려보내주면 고맙겠다. 모두들 스스로 깨닫도록 열과 성을 다해서 거들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중략) 내가 떠나는 경우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

7년 전 <무안신문> 창간 당시 언론들이 흔히 쓰는 정론직필의 식상한 문구를 안고 약자들을 대변하며, 가장 향토적인 지역 신문으로 커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었습니다.

그 동안 공무원노조와 갈등 등을 비롯해 행정과 마찰도 많았고 오해도 많이 샀습니다. 지방선거, 총선, 보궐선거 때는 편가르기 나눔도 당해 보았습니다. 시군통합 찬반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사는 늘 상대성이 있어 당연히 따르는 시비입니다. 이때 사람인지라 억울함에 분개도 했고, 삭히고 꿋꿋이 300호 발간에 이른 것은 매우 뜻이 깊습니다.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버텨 온 지난 7년여의 세월은 대견스럽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세상사는‘안티’가 회자됩니다. 당연지사 선거 때면‘네거티브’가 인기를 얻는 것도 여기에 없지 않습니다. 김길태 사건과 법정스님의 뉴스를 보더라도 무소유 가르침보다는 천인공노할 작태가 회자되는 현실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이 또 찬반으로 갈려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진실은 사장되고 거짓과 허물이 난무합니다. 상대를 헐뜯는 전략과 전술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들이 지역 발전을 이끌겠다고 말합니다. 대안도 없이 그리고 자기가 할수 없는 약속인데도 실천하고, 고치겠다고 합니다. 이는 과거 선거때만 되면 떠드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이 거짓말을 유권자에게 믿으라는 것이고, 이 거짓말을 유권자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갈등보다는 포용, 비난보다는 비판이 낫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늘 악의 편 목소리에 기를 기울이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이중 하나가 포용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확률이 높습니다.

권력이란 본디 나누기를 싫어한답니다. 어렵게 얻은 권력을 누군들 나누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나누면 권력은 더 커지고, 생명도 깁니다. 근친 세력을 초월하여 포용과 통합의 길을 걷어간다면 정치지도자의 삶에는 향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무소유’철학이‘공수레공수거’말을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합니다.

법정 스님은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던 난(蘭)을 통해 소유를 통한 집착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싸움도 인간의 소유욕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합니다.“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며 글과 말로서뿐만 아니라 평생을‘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도 소박한 다비식을 거쳐 한 줌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향기나는 신문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약속해 봅니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 주신 애독자 분들과 군민들에게 오늘의 <무안신문>으로 키워 주신데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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