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안군노인전문요양병원 이한창 한방과장
오늘도 진료실을 찾아온 나이 지긋한 어머님이 물어보십니다.

“내 다리 아픈 거 이거, 한 10년 넘게 됐는데, 침만 맞으면 다 나을 수 있소?”

한의사는 대답을 하기에 앞서 환자분께 한참동안 이 질문 저 질문을 드립니다. 무안은 요즘 한참 농번기인지라, 어머님은 밭에 놔두고 온 일거리(오늘은 마늘을 뽑아야 하는 날인데...) 때문에 마음이 급합니다. 그래도 온 몸 구석구석 평소 고민하지 않던 몸에 대해 이리저리 질문을 하는 한의사가 고맙기도 하고 해서 열심히 대답을 합니다. 20~30분쯤 시간이 지났나봅니다. 어머님의 여러 대답들을 차트에 열심히 적더니 한의사가 대답합니다.

“어머님, 어머님 다리는 침만 맞아서는 다 낫기가 힘들어요. 약을 같이 드시면서 치료하셔야 겠는데요.”의사의 이 대답에 우리 어머님의 표정은 어두워집니다.

‘아니 날 여기 가라고 한 우리 동네 새댁은 침 몇 번 맞고는 다리가 안 아프고 잘 걸어댕기던데? 똑같은 다리에 똑같은 부위가 아픈데 왜 나는 침만으로는 치료가 안되고 그 비싼 한약까지 먹어야 된다는 거야?’

동네 사는 아주머니가 요 앞 병원에 침 잘 놓는 선생이 왔다고 해서 찾아온 터라 침 몇 번 맞으면 금세 쌩쌩해질 줄 알았는데, 차마 눈 앞에 있는 아들 뻘도 안되어 보이는 젊은 의사한테 맘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할 수도 없고... 우리 어머님은 그저 애꿎은 무릎만 두들기십니다. 의사도 이런 어머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최대한 밝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어머니, 제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치료해드릴 테니까 일단 며칠간 침을 맞아보시구요, 침을 열심히 맞았는데도, 아무리 해도 잘 안 낫는 순간이 오면 그 때는 약을 드시는 걸로 하시구요. 약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니깐, 침만으로 다 나으면 저도 그게 맘도 편하고 좋으니까요, 아셨죠? 안쪽 치료실에 가셔서 누워계시면 바로 침 놔드리겠습니다.”

치료가 시작되어 침을 맞으니 당장 그 자리에서는 통증이 사라집니다. 그럼 우리 어머님은 일단 아프던 무릎이 안 아프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역시 침만 맞으면 될 것을 이 선생은 왜 약을 먹으라고 했던거야? 괜히 자기 돈 많이 벌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앞으로도 침만 맞아야지’라며 굳게 결심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허나 웬걸. 다음날 아침 무릎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매우 아픕니다. 치료를 받았는데도 아픔이 그대로니까 괜히 더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단 어제 침을 맞고 있을 당시에는 덜 아팠고, 선생님도 첫날은 침을 맞으면 더 아플 수 있다고 했던 것도 같고... 미심쩍어 하면서 다시 병원에 옵니다. 역시 침을 맞으면 통증이 덜합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도로 아픕니다. 일주일, 열흘...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도 3분의 1정도는 통증이 덜한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이상은 도무지 좋아질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럼 우리 어머님은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혹은 의사에게 이 생각을 바탕으로 이렇게 위로(?)를 합니다.

“선생님이 열심히 치료해주는데, 선생님하고 내가 인연이 안 맞는가봐. 전에 그 새댁은 선생님하고 인연이 되갖고 그냥 나아버리더니, 난 잘 안 낫네...”어머님의 말씀에 한의사는 답답합니다.

한방진료를 하다보면 한 달이면 몇 번씩,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의사와 환자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입니다. 이는 환자분들이 침과 한약의 치료범위나 각자의 역할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특히나 요즘에는 중금속이니, 농약이니, 저질 중국산 약재 등등 한약에 대한 일반인들의 불신이 더해진 상황이라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문제들입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과 한약, 더불어 뜸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침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질환의 범위는 이렇습니다.

1. 짧은 기간(최대 3개월 이내, 대개는 1개월 이내 발병한 경우) 앓은 근골격계 질환.

ex) 자고 일어나니 목이 뻐근하다. 한 달전부터 아침에 손이 부어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발목을 삐었다... 등

*근골격계 질환: 목, 허리, 어깨, 무릎 등 팔, 다리 등의 근육과 관절, 뼈의 기운부족, 기의 정체(돌지 못하고 막힘)로 인한 통증을 수반한 질환.

2. 소화기의 병이기는 하나 급체와 같이 발병한지 얼마 안된 경우.

다음은 약이나 뜸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의 범위입니다.

1. 비교적 오래된 내장 질환(3개월~6개월이상)

ex) 홧병이 오래됐다, ‘맛있게’ 밥을 먹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반대로, 밥이 너무 맛있어서 살이 찌니 걱정이다. 항상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다, 소변이 시원치 못하다, 오랜 기간 변비로 고생했다... 등. 이외 몸이 느끼는 거의 모든 이상 감각, 괴로움.

2. 오래된 근골격계 질환. 특히 외관상 구조나 형태의 변형이 온 경우

ex) 1년~ 수년, 수십년 팔/다리/허리/무릎이 아팠다. (오랜기간 병을 앓아서) 양쪽 다리의 굵기가 다르다, 언젠가부터 손가락 마디마디, 무릎마디가 부어올라 원래의 모양과 다르다...등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침은 ‘짧은 시간’ 내에 발병한 질환들에 효과가 큽니다. 대체로 주위에서 ‘침 한방에 다 나았다’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면, 그 중 90%이상은 아픈지 얼마 안 된 질환들입니다. 침은 비용도 저렴하면서 효과도 빠릅니다. 가끔 환자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픈지 얼마 안 된 병은 낫기도 금방 낫고, 아픈지 오래된 병은 낫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10년 넘게 아픈 무릎을 침 몇 번만에 낫게 해달라고 하시면 도둑놈 심보죠~”

이 얘기는 단적으로 빨리 병원에 온 분들은 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니 그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저렴하며, 오랫동안 병을 방치한 분들은 약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치료기간도 길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말입니다. 흔히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고 하죠. 딱 이 경우에 쓰일 수 있는 말입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과 뜸은 침 치료보다 환자의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기본적으로 기간이 길고 비용도 많이 드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오래된 병의 뿌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데에는 약과 뜸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특히 뜸은 그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뜸 灸= 오랠 久 + 불 火) 오랜 기간 치료를 해야 합니다.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유명세를 탄 구당 김남수 선생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뜸을 뜨며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죠. 이미 수십년 동안 해왔다고 방송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환자분들이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와서 몇 년씩 뜸을 뜰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의사들이 많이 권하게 되는 것이 바로 약입니다. 약을 지어서 떼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고약한 병에는 약이 아니면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실제로 일반일들이 제일 잘 아는 동의보감은 약에 대한 내용이 95%이고 침과 뜸에 대한 내용이 나머지 5%입니다. 치료에 있어 약의 비중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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