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군노인전문요양병원 이한창 한방과장

▲ 이한창 무안군노인전문요양병원 한방과장

진료실에서 치료를 하다보면 여러 환자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기억에 남는 환자분들도 많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수개월에서 수년, 혹은 젊은 시절 이후 오랜 기간 앓아왔던 평생의 고질병이 해결된 뒤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분들은 특히나 기억에 뚜렷이 남습니다. 또한 이런 분들 덕에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더불어 이러한 환자분들의 얼굴, 말씨, 목소리, 살아오신 이력 등등... 치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기억의 단편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끔씩 마음속에 떠올라 제 가슴을 따듯하게 합니다.

자, 여기까지만 읽고 본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지요. 환자는 자신을 오랜 기간 괴롭혀 온 병을 치료했으니 너무 기쁠 것이고, 또한 의사는 쉽지 않은 질환을 고쳐낸 데 대한 보람과 기쁨이 충만할 테니까요. 또한 이런 환자분들은 의사 입장에서는 참 예쁘고 고마운 환자겠지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의사의 기억에 뚜렷이 남는 환자란 질환의 측면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환자가 아닙니다. 질환의 경중으로서만 본다면 예쁘고 고마운 환자가 아니라 오히려 밉고 못된 환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잘 읽어주세요. 아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모든 이들이 지금 저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오랜 기간 앓아온 자신의 고질병을 병원에 다니면서 깨끗이 치료한 환자는 의사들에게는 의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들임에는 틀림없지만, 뒤집어 생각해본다면 그만큼 환자가 몸에 지니고 있던 병들이 정말이지 고약한 질환들이었기 때문에 의사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에 새겨져 버린 환자들인 것입니다. 병이 깊어지기 전에, 몸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병원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때를 놓치고 병이 치료가 어려운 시점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으시니 이미 병은 치료가 쉽지 않은 상태이기에 병원에 자주 내원하셔야만 하고, 의사 또한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낳는 질환이었기에 환자와 그 환자가 지닌 질환, 더불어 오랜 시간동안 치료하면서 나눈 이런저런 대화까지도 기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환자는 의사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 얼른 병원을 찾아 짧은 시간 안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자신의 질환이 몸에 깊은 뿌리를 내리기 전에 그 싹을 잘라내는 현명한 환자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길에서 의사를 만나 “아이고 선생님 그 때 선생님이 제 허리 무릎 잘 치료해 주셔서 요즘은 날아다닙니다~~”라며 반갑게 말을 걸어도, 미처 두 세 번의 치료 만에 허리와 무릎이 나은지라, 그 의사가 “누구신지...??” 라며 기억을 못하는 환자여야 합니다. 우스운 얘기일지 몰라도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께서는 부디 의사와 특별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맺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이미 몸에 깊이 뿌리내린 질환을 가진 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 저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드셔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버틸만 해~ 내가 어떤 몸인데!!! 이제껏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살아온 몸이다 이거야~”라며 자신의 질환을 가볍게 여기고 계신 분들, 혹은 자신의 몸이 평생 강철 같으리라 착각하고 계신 여러 독자 분들은 몸의 이상을 발견하면 늦기 전에 어서 병원을 찾으십시오. 꼭 저를 찾아오시라는 게 아닙니다. 평소 다니던, 알고 지내던, 예전에 자신을 잘 치료해 주었던 그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몸의 문제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또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한의원이 잘 되는 데는 입소문을 내고 다니는 열성적인 환자분들 덕이 큽니다. 실제로 어떤 한의원의 경우에는 자신의 한의원을 잘 홍보해주시던 아주머니 한 분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한 뒤로 그 해당하는 달의 매출이 30%가 감소한 경우도 있을 정도니, 한의원과 ‘입소문 마케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도 재밌는 경우가 있습니다. 뿌리 깊은 고질병을 치료하고자 한의원에 오랜 기간 계속 다니시면서 효과를 보고, 그에 대한 홍보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은 홍보를 해주시는 ‘기억에 없는 환자분들’ 또한 많다는 겁니다.

이 ‘기억나지 않는 환자분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면, 몸의 문제를 느낀 지 불과 1주일에서 2주일 정도 밖에 안 되는 가벼운 질환으로 한의원을 방문하여 말 그대로 ‘일침’에, 침 한 방에 깨끗이 나은 환자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의사는 이 환자분들이 기억이 안 나지요. 물론 의사된 입장에서 자신을 믿고 찾은 모든 환자분들을 기억에 담아두어야 하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사람의 머리란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요. 하루에도 수십 분의 환자분들, 그 중에서 또 새로 오시는 환자분들 또한 수십 분. 이런 여건에서 한 번의 치료로 완쾌되어 다시 내원하지 않는 환자를 기억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너무도 간단히 치료가 되는 바람에 “침이란 것이 참으로 신기하구나!”라고 느끼고는 주위에 “OO한의원 한 번 가봐~ 내가 OO가 아파서 갔는데 글쎄......”라며 입소문을 내시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얘기를 들은 분들은 병원에 오셔서는 “OOO가 소개해서 왔는데요...”라며 말을 꺼내십니다. 이 얘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우리 한의원을 홍보해주시는 고마운 분이 과연 누굴까?’ 하여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물론 기억이 안 나지요. 이름을 듣고 차트를 찾아보면 한의원에 방문한 횟수가 불과 1-2회. 한의학 치료라고 하면 흔히들 장기간의 치료 이후에 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발병한 지 얼마 안 된 병들은 이렇듯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고쳐집니다. 때로는 치료를 받은 즉시, 의사는 치료했는지 조차 기억이 안 날만큼 빠르게 치료가 된다는 말입니다.

‘음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덕. 조상님들이 후손들을 보살피는 마음이 대표적인 음덕이죠. 제가 생각하는 의사와 환자의 ‘진정한 아름다운 관계’란 이런 ‘음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병이 깊어지기 전에 치료를 받아서, 환자도 의사도 서로 고생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고, 그 후에는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관계말이죠. 부디 앞으로 저와 관계 맺으시는 모든 환자분들은 (물론 평생에 의사 볼일 없는 게 가장 행복이겠지만요) 이러한 ‘음덕’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으면 하고 희망해봅니다.

(다음엔 ‘침과 뜸, 약’이라는 한의학의 치료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