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진 논설위원(초당대 교수)
오늘날 方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 좋은 일이다. 標準語도 方言도 지켜 나가야 할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方言이 소중하다고 해서 標準語를 없애야 한다고 否定하는 일은 곤란하다.

標準語를 否定하는 사람들 중에는 ‘표준어 규정’의 總則에 대해 誤解하는 사람들이 많다. “標準語는 敎養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現代 서울말로 定함을 原則으로 한다.”는 總則에서 우선“敎養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誤解하는 사람들이 많다. 곧 標準語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敎養 없는 사람들이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여기서 “敎養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서울말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왜냐면 이 구절은 그 이전의 표준어 규정에서“中流 社會”라는 말 대신에 쓴 말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중류 사회”라는 것도 서울말 話者 중에서 중류 사회를 말한 것이다. 곧 宮中 言語나 上流層의 言語도 아니고 그렇다고 下流層의 言語도 아닌 ‘普通 서울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그것이 ‘中流’라는 말이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해서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서울말 話者 중에서도 敎養 있는 사람의 말을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그 점을 밝힌 것이다. 아무리 서울말이라고 해서 敎養 없는 말을 標準語의 基準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거친 말과 辱說을 해대고 發音이 좋지 않은 사람의 말을 標準語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따라서 서울말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敎養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方言 話者들 중에도 물론 敎養 있는 사람이 있다. 方言도 標準 方言은 敎養 있는 方言 話者의 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敎養 있는 사람들”이라는 구절이 標準語 話者만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서울말”에 대해서도 誤解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말이 아니면 標準語가 될 수 없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말로 定함을 原則으로 한다.”는 구절은 原則은 그렇게 정하되 例外를 인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서울 지역에 없는 現象을 표현하는 말은 당연히 方言에서 가져 와서 標準語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農村과 漁村, 山村, 鑛山村 등에 고유한 현상에 관련된 낱말은 서울말에 없기 쉽다. 따라서 이런 분야의 말들은 당연히 方言에서 가져와서 표준어로 삼아야 한다. 또한 서울말이 아니더라도 전국적으로 서울말보다 더 널리 쓰이는 낱말이 있다면 그 낱말은 서울말과 함께 ‘複數 標準語’로 選定될 수도 있고, 또 현재도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1988년 한글맞춤법 改正 때 상당수 複數 標準語를 허용하였는데, 앞으로는 신중하게 복수 표준어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 한 槪念에 대해 標準語가 너무 많으면 混亂스럽지만 상황에 따라 두 개 정도의 共存은 오히려 한국어의 表現을 豊富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래’를 ‘날개’의 非標準語라고 하는데, ‘날개’와 ‘나래’가 주는 語感은 다르다. ‘나래’는 ‘날개’보다 더 가벼운 느낌을 준다. 낱말이 뜻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느낌까지 담는 그릇이라면 ‘날개’와 ‘나래’는 둘 다 標準語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요즘 ‘~이길래’라는 표현도 매우 많이 쓴다. 이것도 ‘~이기에’의 非標準語라고 하는데, ‘~이길래’는 ‘~이기에’보다 더 큰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서 요즘 强調的 用法으로 널리 쓰인다. 따라서 이것도 複數 標準語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표준어에 대해 不滿이 많이 일어나는 原因 중의 하나는 한 槪念에 標準語를 딱 한 낱말로만 限定하려는 너무 硬直된 標準語 選定에 있다.

세 개 이상의 표준어는 혼란을 일으켜서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두 개로 한정된 複數 標準語는 앞으로 잘 판단하여 더 늘리는 것이 標準語의 限界를 克復하는 措置로서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낱말 형태로는 복수 표준어를 허용할 수 있지만 發音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발음의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韓國語 標準發音은 반드시 ‘서울말 發音’의 單數 標準語만을 인정하고 지켜 나가야 한다.

오늘날 標準語를 없애자는 過激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쪽만을 살리고 다른 한 쪽은 죽이자는 주장은 標準語와 方言의 올바른 관계를 모르는 말이다.

‘標準語’는 公的인 言語며 ‘方言’은 私的인 言語다. 우리는 公的인 상황에서는 標準語를 쓰되 私的인 상황에서는 方言을 써도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어느 한 쪽만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따라서 標準語와 方言도 하나로 統一해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標準語와 方言은 서로 그 성격과 쓰임이 다르므로, 補完的으로 共存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 구별해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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