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辰 (草堂大 교수. 도서관장)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언어 혼란이 극심하다. 말을 보면, 방송에서도 표준 발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긴소리와 짧은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비표준 발음이 방송을 휩쓸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국호인‘大韓民國’을 [대ː한민국]으로, ‘韓國’을 [한ː국]으로 표준 발음으로 방송하는 것을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다. 방송인들이 자기 나라 國號(국호)조차 올바르게 발음하지 못할 정도니 다른 낱말은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인들은‘韓國語(한국어)’와‘한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에 金容沃(김용옥) 교수가 <논어 한글 역주>라는 책을 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책 제목이다. <논어 한국어 역주>라 해야 말이 된다. 왜냐면 번역은‘韓國語’라는 언어로 하는 것이지‘한글’이라는 글자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번역이란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라 언어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어, <논어>의 첫머리“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한글로“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바꿔 적으면‘번역’인가? 번역은 그 한문 문장을“배우고 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한국어 문장으로 바꾸는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한글 역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한국어 역주”라 해야 말이 된다. 만약에 그 일을“한글 역주”라고 한다면, 번역할 때 漢字(한자)는 한 글자도 적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金容沃(김용옥) 교수는 오늘날 自他(자타)가 公認(공인)하는 한국 最高(최고) 수준의 학자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한글 역주”란 엉터리 소리를 하고 있을 정도니 문제가 심각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지난 1월 8일에 국립국어원(당시 원장 이상규)은 YTN(사장 구본홍)과 방송언어를 통한“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맺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 또한“韓國語 세계화”라 해야 말이 맞다.“한글 세계화”란‘한글’이라는 글자를 세계에 보급하여 외국인들도 한글을 글자로 쓰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韓國語 세계화”는‘韓國語’라는 언어를 세계에 보급하여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쓰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과연 국립국어원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외국에‘世宗學堂(세종학당)’이라는 기관을 세우고 있다. 이 기관은 韓國語와 한국 문화를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어’는 크게는 한국어의 말과 글 전체를 가리키고, 좁게는 한국어의 말을 가리킨다. 국립국어원이‘世宗學堂(세종학당)’을 통해 해외에 보급하고자 하는 것은 한글이라는 글자가 아니라 한국어 전체 아니면 한국어라는 말이다.

따라서 국립국어원이 YTN과 협약을 맺은 것은“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韓國語 세계화”를 위한 것이다. 만약에 진짜로 국립국어원이“한글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했다면 YTN과 협약을 맺을 이유가 없다.
 YTN은 말을 다루는 방송사인데 도대체 한글이라는 글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따라서 국립국어원이 YTN과 협약을 맺었다는 일 자체가“韓國語 세계화”를 위한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한글의 세계화”라고 하면 말이 되는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영어를 배운다고 하지 로마자를 배운다고 하지는 않는다. 언어인 영어가 세계화되었다고 하지 글자인 로마자가 세계화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어인 韓國語를 세계화하려는 것이지 글자인 한글을 세계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韓國語가 세계화되면 한글은 저절로 그 부속 글자로서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일을“한글의 세계화”라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妄發(망발)이다.

국립국어원은 大韓民國 정부가 韓國語 최고 기관으로 세운 국립기관이다. 한국어에 관한 한 최고 권위를 지녀야 하는 기관이‘韓國語’와‘한글’의 개념마저 혼동할 정도니 문제가 심각하다.

오늘날 한국인의 말과 글은 혼란이 극심하다. 이런데도 정부는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하기야 국립국어원이 한국어 혼란을 부추길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