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교수신문은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4자 성어 하나를 선정한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2007년은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되었다. 4자성어의 대부분이 국민을 대표해야할 정치권의 문제점들을 함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08년에는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선정되었다. 호질기의는 병이 있어도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이다. 호질기의는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태를 비판한 말이다. 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면서 다른 이의 충고를 무시하는 현상을 비유한 것으로 정치권을 빗대 풍자했다. 특히 국가 전반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질책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권을 하면 여론의 흐름을 귀담아 듣지 않고 권력 내부에 높다란 성벽을 쌓아올려 국민과 소통을 단절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유신독재와 5공 6공 시대의 권력집단은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의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역시 그 전철을 밟았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대선에서 500만표 이상을 획득한 정부와 여당은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있다. 야당이나 진보정당이 있지만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경제위기와 최근 용산 참사는 마음마저 꽁꽁 얼어 붙게 만들었다. 경제위기로 인한 어려움은 굳이 통계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절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9년 기축년(己丑年)은 소의 해다. 소는 여유로움과 평화를 상징하며, 유순하고 참을성이 많은 동물이다. 이러한 소의 해인 2009년은 세계적인 경기 악화로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IMF 때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살기가 어렵다고 말만하고 주저앉아서야 되겠는가?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소와 관련된 4자성어 에서 찾아보자.

첫째, 호시우행(虎視牛行)이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고 날카롭게 직시하고 소처럼 우직하고 신중하게 행하라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른 시대에 황소걸음으로 걷다가 정해진 시간에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앞서지만 황소처럼 걷더라도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판단하면 그것이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지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 우보천리(牛步千里)이다. 소걸음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면 천리 끝을 볼 수 있다는 뜻인데 작은 수익을 위해 조급하게 하기보다는 큰 이익을 위해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성실과 끈기로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면 그 인내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셋째, 석전경우(石田耕牛)이다. 소가 돌밭을 갈듯이 역경을 헤쳐 나간다. 우리에게 닥친 일이 힘들고 진도가 쉬이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한다면 마침내 뜻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결코 소걸음으로 걷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빨리빨리’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국민들은 더욱이 소걸음을 천시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앞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온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참으로 소중한 것을 내버려둔 채 왔으므로 후회하고, 쉽게 지치고 포기해버리는 모습이 다반사다. 2009년에는 우직하고 인내하고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2009년에는 石田耕牛하는 마음가짐으로 虎視牛行하고 牛步千里 했으면 한다. 그리고 정쟁을 그칠 줄 모르는 정치권을 비롯하여 사회전반 갈등 현장에 소싸움의 원칙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싸움하는 소는 머리를 숙이고(겸손하게, 겸허하게), 뿔 외에 신체의 다른 부분은 싸움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으며(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변칙을 동원하지 않고), 패배하면 깨끗하게 물러나는(헐뜯지 않고 게임의 룰을 존중하는) ‘싸움에 임하는 황소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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