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원 원장(무안종합병원 정신과)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기축년이어서‘소’의 해라고 한다. 작년 한참 동안을‘소’와 연관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올해는 그런 논란들이 없이 조용히 넘어갔으면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이 유쾌하진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새해가 됐으니 새로운 변화와 시작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먼저‘소’의 해를 맞이하여 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에서 소는 실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되어 왔다.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역할도 담당하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의 역할까지 하였다. 사람들은 사람 이외에는 소가 가장 친숙했던 동물이었다. 소는 우직하나 성실하고, 온순하지만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하는 성격이 있다. 모쪼록 올해에는‘소’처럼 성실하고 끈질기게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나간 아쉬움은 털어 버리고 새로운 계획이나 목표 등을 가지려고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기존의 습관 등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계획 했다가도 금방 포기하게 되고 나쁜 것을 알면서도 익숙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들이 허다하다. 오죽하면“작심 삼일”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하긴, 요즘은 사람들의 참을성이 더욱 더 없어져서 작심 삼일만 해도 대단한 행동을 한 거라는 농담을 듣기도 한다.

병원에 있다 보면“나쁜 습관”으로 시작되어“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해 버린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작년 여름 경 면담실에서 만난 환자는“나쁜 습관”을 넘어 선“심각한 질환”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이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남자는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줄도 모르고, 아쉬운 소리는 더더욱 못하는 극히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환자는 소규모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협력 업체들과 돈 거래를 하는 경우에서도 하루나 이틀이 늦는 것에 대해서 주위에게 화를 내지 못했고, 직원들이 근무 할 때 불성실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적도 잘 못했다. 그렇다 보니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었고, 그래서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술을 한잔씩하고 나면 거래처 사람들과 직원들에게 전화로 평소에 섭섭한 감정을 퍼부어 댔고, 가족들에게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한 두번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주위 사람들도 이 환자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전화를 끊어 버리기도 했고, 직원들은 잔소리가 싫다며 그만 둬 버렸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다음 날 일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일들이 잦았고, 그러다 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결국, 젊었을 때부터 성실하게 쌓아온 신용들이 무너졌고, 알차게 성장했던 공장은 일감이 없어져 문을 닫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환자는 부인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면담 도중 환자는 자신이 싫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억울하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이런“심각한 질환”을 정신 의학에서는“중독”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만 마음을 바꾸어 먹으면, 습관을 조금만 고치면 금방 괜찮아 질 거라고 착각을 하지만, 사실이“중독”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전문가와의 깊은 상담과 적절한 투약, 가족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 환자 자신의 뼈를 깎는 노력들이 함께 동반되어야만“중독”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환자는 다행히도 세 가지가 함께 위력을 발휘 해 현재는 건강하고 즐거운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환자의 경우에서도 자신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지갑에 돈을 한푼도 안 가지고 다녔고, 사람을 만나면 먼저 술을 거절하는 말을 해야만 했었고,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 생활에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아직도 나를 만나면 완전히 끊은 것이 아니고 참고 있는 중이라며 지금도 힘들 때는 약물의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2009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하고 노력한다. 힘들고 피곤하고 어렵지만, 우리 모두가 성공했으면 한다. 익숙하고 습관적인 옛날의 관습이 나를 유혹하더라도 떨쳐 내고 마음을 잡아가면서 노력한다면,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 좋은 습관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고, 모두가 좋은 습관을 갖춘다면 더욱 더 살기 좋은 그런 세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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