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배심원제 새로운 사회적 합의 대안
합의 시스템 제도화 필요

<글 싣는 순서>
1.갈등으로 멍드는 지역
2.사회적 합의 타산지석
3.어떻게 제도화 하나

크고 작은 갈등으로 지역사회가 멍들고 있다. 지역개발이나 공공사업 등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때론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고, 때로는 지난한 법정다툼으로 이어진다. 행정권력과 국회권력을 뽑는 선거는 오히려 지역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생각과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은 서로가 마주앉아 토론하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또 합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의식도 돋운다. 이에 따라 갈등 관리·조정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기사에는 성공적인 사회적 합의 모델을 찾아 실시하고 있는 모범사례를 정리해 본다. <편집자주>

협의회 구성 전원합의 원칙하에 ‘끝장토론’

경기도 시화지구 개발사업은 공공정책 갈등해결 모범사례로 꼽힌다. 정부·자치단체·지역주민·시민사회단체·전문가가 시화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꾸려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풀었다.

특히 다수결이 아닌 전원합의제를 채택한 시화지속협의회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양쪽이 1박 2일 동안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시화지구 개발사업은 ‘밀어붙이기’라는 패러다임을 벗고 사회적 합의로 풀어낸 국책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각종 행정행위 과정에서 정상적인 해결이 어려운 민원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공개토론과 이해관계 조정·중재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시민배심원제도 사회적 합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협의회=시화지구 개발사업은 수도권에 새로운 공장용지를 만들고자 1970년대 논의를 시작해 1986년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1단계로 현재의 시화공단과 배후주거단지를 만들고 2단계로 도시개발과 농지를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애초 시화호 담수를 농업·공업용수로 쓰겠다고 했으나 1996년 시화호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심각한 오염문제가 드러났다. 1999년 시흥·안산·화성지역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시화호 연대회의를 꾸리는 등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다.

시화지속협의회가 꾸려진 건 지난 2004년 1월이다. 정부는 2003년 12월 공청회를 열고 시화호 남측 개펄을 관광·레저와 연구·주거지역 등으로 만드는 장기종합계획(안)을 내놨으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정부는 이때 주민·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시화호 연대회의는 정부의 이런 제안에 시민단체 추천 전문가 참여, 전원합의제, 홈페이지 공개 등을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시화지속협의회가 꾸려지게 됐다.

시화지속협의회는 건설교통부·환경부(한강유역환경청)·산업자원부 등 중앙부처와 경기도·안산시·시흥시·화성시 등 자치단체, 지방의원·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등 30여 명이 참여했다.

▲‘전원합의제’와 ‘끝장토론’=정부·자치단체가 제안·운영하는 민·관 협의체는 대개 도중에 깨지거나 들러리 혹은 형식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자치단체가 제안하는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그러나 시화지속협의회는 끝까지 활동을 지속했고 현재 법적 기구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다수결이 아닌 ‘전원합의제’를 의결방식으로 채택했고 또 시민사회에서 요구한 전문가가 참여하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원합의제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 전문가를 불러 집단 교육과 토론, 현장 답사와 단기 용역 등을 수행하게 했고 위원들은 합의를 위해 1박 2일 동안의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 시화지속협의회는 사전 논의를 활성화해 회의를 열기 전에 주제와 쟁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토론을 벌여 불필요한 논쟁을 피했고 다차원적인 논의구조를 통해 사고와 토론의 질을 깊게 하는 등의 운영방식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해결했다.

▲갈등해법 희망을 만들다=시화지속협의회가 그동안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자치단체가 협의회에서 탈퇴를 했다가 다시 참여하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시화호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견해를 모으면서 완전히 탈퇴했다.

그럼에도 시화지속협의회는 공공정책 갈등해법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엄청난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해왔던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교통부는 정부·자치단체·주민·시민사회단체·전문가 등이 마주앉아 머리를 맞대고 전원합의제를 원칙으로 대화와 토론을 벌여 조금씩 양보하며 타협안과 대안을 찾는 것이 사업추진이 더 빠르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지난해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지역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제도화돼 극단적인 갈등과 마찰이 없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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