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합의 없인 사업 못해
↔"더디 가도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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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합의 없인 사업 못해
↔"더디 가도 함께 간다"
  • 김영준 기자
  • 승인 2008.11.1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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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골프장·지장리납골당·편가르는 선거 등 행정·정치, 갈등 증폭에 한 몫

지역내 갈등, 해법을 찾아라

<글 싣는 순서>
1.갈등으로 멍드는 지역
2.사회적 합의 타산지석
3.어떻게 제도화 하나

크고 작은 갈등으로 지역사회가 멍들고 있다. 지역개발이나 공공사업 등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때론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고, 때로는 지난한 법정다툼으로 이어진다. 행정권력과 국회권력을 뽑는 선거는 오히려 지역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생각과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은 서로가 마주앉아 토론하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또 합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의식도 돋운다. 이에 따라 갈등 관리·조정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기사에는 성공적인 사회적 합의 모델을 찾아 실시하고 있는 모범사례를 정리해 본다.<편집자 주>

사회적 합의 타산지석

<사례1> 갈등 조정하는 오스트리아…빈 국제공항 제3활주로 신설 수백 차례 토론 후 최종결정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 제3활주로 신설 결정을 위한 갈등 조정은 유럽에서도 눈길을 끈 조정사례다. 갈등 조정을 위해 제3자인 조정팀을 국제공모로 선정하고 5년에 걸친 조정기간에 공식회의만 166차례, 비공식을 더하면 500차례가 넘는 대화와 토론을 벌였다.

특히 지난 2005년 6월 빈 공항 갈등포럼은 신설 결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 착공은 2012년에 결정한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결정과정에서 갈등을 해결한 것이다. 공사허가 등 집행단계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손실이 발생하는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빈 공항 3활주로 2015년 신설 갈등=빈 국제공항 주식회사는 1998년 제3활주로 건설을 포함한 공항 확장 계획을 수립·발표했다. 현행 2개 활주로를 최대한 이용하면 시간당 72차례 이·착륙이 가능한데 2015년이면 최소 80차례 이·착륙이 필요하다며 신설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항공교통량 증가로 소음공해에 이미 시달려 온 지역주민들은 제3활주로 신설이 항공소음을 더욱 악화시키고 지역발전에도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조직적인 저항에 나섰다.

빈 공항 대표자들은 이런 반발에 활주로 신설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을 설명하고 항공기 소음저감을 위한 보완대책을 마련해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반대운동의 강도를 높이며 오히려 더욱 강한 반발로 맞섰다.

결국 빈 공항은 활주로 신설과 소음문제에 관한 '갈등조정'을 중립적인 제3자에게 맡기기로 결정하고 변호사이자 녹색당원인 프라다씨에게 조정역할을 맡겼다. 프라다씨는 2001년 3월 국제공모로 3명으로 구성된 조정팀을 뽑고 갈등조정을 시작했다.

프라다씨와 조정팀은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갈등조정 협상을 벌일 이해당사자 집단의 범위와 각 협상대표를 정했다. 이렇게 구성된 빈 공항 갈등조정포럼은 비공식까지 500차례가 넘는 회의를 거쳐 2005년 6월 신설 결정에 합의했다.

빈 공항 갈등조정포럼은 합의과정에서 홈페이지(www.viemediation.at)를 통해 모든 공식회의록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또 1년에 2∼3차례 모두 10회에 걸쳐 정보매체를 따로 만들어 조정과정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 갈등조정포럼에서 조정한 내용이 미래에 실행되는 것이어서 합의내용이 끝까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사후 갈등관리기구인 '대화포럼' 구성도 조정안으로 정했다. 대화포럼은 서로 조정내용을 어길 경우 법적 소송 등을 통해 강제할 수 있다.

빈 공항 대화포럼 대표인 헤지나씨는 "갈등조정을 통해 2015년 제3활주로 신설을 결정했지만 착공 여부는 2012년에, 그때도 제3활주로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따져 최종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책 집행단계가 아닌 입안·결정 단계에서 갈등을 미리 해결한 것이다.KPD 제도 중 눈에 띄는 것은 KPD 3단계까지 과정에서 어느 단계에서라도 큰 반대에 부딪히면 사업추진이 전면 중단되고 이에 대한 수정·보완을 거쳐 KPD 1단계부터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 KPD는 KPD(+)까지 진행한 후 최종 승인을 받았다.

이 사업은 1991년 정부가 재추진을 공포했을 당시에도 1970년대처럼 시민과 전문가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사업계획은 또다시 중단됐고 정부는 1994년 전면 수정·보완을 거친 KPD(+)를 진행해 1997년에 내각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사례2> 30년 넘게 걸려 완공된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1970년대 사회적 합의 명문화

네덜란드는 공공사업 결정과 추진에서 4단계에 걸친 사회적 합의과정을 1970년대에 명문화했다. KPD(Key Planning Decision)라 불리는 이 제도는 주민참여와 갈등해결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공공사업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

성문화된 KPD 제도는 정부가 공공정책을 밀어붙이려 하기보다는 주민·전문가들로부터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견해차이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에 최대한 노력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30년 넘게 걸려 완공한 남부 고속철=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로테르담을 거쳐 벨기에 브뤼셀∼프랑스 파리를 잇는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High Speed Line-Zuid)이 지난 2006년 7월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이 사업은 최초 계획(1973년)부터는 34년, 정부 재추진 공포(1991년) 이후 16년 만에 힘들게 이뤄졌다. 사업계획 입안 당시에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땅에 대한 애착과 환경의식 등으로 큰 반발에 부딪혀 정부가 사업을 포기했다. 또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재추진을 공포한 후 합의과정에서 정부는 9억 8500만 유로(1조 3100억여 원)를 따로 부담해야했다. 농업용지를 아끼고 주민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10㎞ 지하터널을 뚫는 등 설계 변경에 따른 것이다.

네덜란드 남부 고속철은 25년 동안 수익을 보장하는 민자사업임에도 전체 구간의 55%가 비용이 많이 드는 지하터널이거나 다리형식이고 35%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깔고 그 위에 철로를 깔았으며 10%만 땅 위에 지어졌다.

이처럼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인 데에는 주민참여를 통한 갈등해결 없이는 공공사업 추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사회적 합의 명문화=네덜란드는 주민·지역정부→전문가→내각(상·하원)→최종의견수렴으로 이어지는 4단계 주민참여와 사회적 합의과정을 1970년대에 성문화했다. KPD라 불리는 이 제도는 토지이용이나 도로·주택건설 등 공공사업 추진 때 적용된다.

정부는 공공사업을 입안하면 초안을 공포하고 최대 12주 동안 주민참여를 거치고 다시 최대 12주 동안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의견을 듣는 KPD 1단계를 진행한다.

KPD2는 전문가들이 살피고, KPD3은 하원이 9개월 이내에 검토를 거쳐 상원이 의결한다. KPD4는 승인된 사업을 다시 시민에 공개하고 최종 의견개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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