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昌辰 (초당대 교양과 교수. 도서관장)

작년 7월에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안이 바뀌었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그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남녀 어른, 남녀 어린이의 네 개의 목소리로 녹음하여 전국에 보급하여, 국민의례 시 활용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녹음테이프의 발음이 잘못 녹음되어 있어 큰 문제이다.

국기에 대한 새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이다. 이 문장에서 첫소리를 긴소리로 발음해야 할 낱말은 “正義[정ː의]”, “大韓民國[대ː한민국]”, “다할[다ː할]”의 세 개이다. 그런데 남자 어른은 “大韓民國”을 [대한민국]으로 짧게 잘못 발음하였다. 나머지 여자 어른과 남녀 어린이는 세 낱말을 몽땅 다 짧게 틀리게 발음했다. 그러므로 4명 전체의 표준 발음 비율은 겨우 17%밖에 안 된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네 명 모두 우리나라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표준발음법’ 제3장 ‘소리의 길이’의 제6항은 “모음의 장단음을 구별하여 발음하되, 단어의 첫 음절에서만 긴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규정에 따라 “大韓民國”은 [대ː한민국]으로 첫소리를 길게 내야 표준발음이 된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나라 이름을 틀리게 녹음하여 전국에 보급해서, 전 국민에게 나라 이름을 틀리게 가르치고 있다. 이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나라 망신이다.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이런 내용을 9월 25일에 ‘국민신문고’에 보냈다. 9월 30일에 행정안전부로 넘겨져서, 10월 8일에 행정안전부에서 답변이 왔다. “국립국어원 등 관계기관에 “대한민국”이 표준발음 관련 규정 등에 맞게 발음되었는지 여부를 확인 중에 있으며, 확인 결과 잘못 발음되어 시정이 필요할 경우 조속한 시일 내에 시정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조치 결과에 대한 추가 답변이 없다. ‘대한민국’ 행정안전부가 ‘대한민국’의 발음도 몰라서 확인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니 말이 되는가. 또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 이름인 ‘대한민국’의 발음 하나 판명하는 데 무려 25일도 넘게 걸린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는 ‘표준발음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왜 ‘한글맞춤법’은 지켜야 하는가? 글을 올바르게 적기 위한 기준으로 ‘한글맞춤법’이 필요한 것처럼, 말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기준으로 ‘표준발음법’이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표준발음’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글은 안 변하는가? 오늘날 인터넷에서 ‘외계어’니‘한국어 파괴’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글의 변형도 심하다. 그렇다고 ‘한글맞춤법’을 안 지켜도 되는가? 글의 혼란이 심하면 심할수록 ‘한글맞춤법’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우리글이 바르게 되는 것처럼, 말의 발음이 혼란스러울수록 오히려 더 표준발음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우리말이 바르게 된다.

오늘날 한국어는 세종학당 등을 통해 국제어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다. 한국어가 국제어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선 표준발음부터 확립해야 한다. 국가 기관들이 자기 나라 이름조차 정확히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인 현재의 한국어 발음으로는 한국어가 국제어가 되기 힘들다. 그러면 오늘날 왜 한국어 발음은 혼란스러워졌는가? 그 까닭은 한글專用(전용)에 있다. ‘표준발음법’에서는 긴소리와 짧은소리를 구별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맞춤법’은 그 둘을 구별하여 적지 않게 하고 있다. 그래서 긴소리와 짧은소리를 구별하여 적지 않은 한글로만 적힌 글을 읽으면 무조건 짧게만 발음하게 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누구나 [대한민국]으로 틀리게 발음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이 표준발음을 하게 하려면 한글專用(전용)을 폐지하고 國漢字混用(국한자혼용)으로 글을 적게 해야 한다. 곧 한자어는 ‘大韓民國’처럼 한자로 적게 해야 [대ː한민국]으로 올바르게 발음할 수 있다. 아니면 한글맞춤법을 고쳐서 긴소리에는 세종대왕 때의 傍點(방점)처럼 長音符(장음부)를 적게 해야 한다.

한국어 표준발음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야 할 행정안전부가 오히려 國號(국호)를 엉터리 발음으로 녹음하여 국민을 잘못 이끌고 있으니 큰일이다. 행정안전부는 하루 빨리 ‘국기에 대한 맹세’ 녹음테이프를 표준발음으로 새로 녹음하여 보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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