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무안 황토 고구마클러스터에 공장 100개 유치가 꿈이 아니길 바란다.”

▲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예로부터 자연재해로 인해 곡물이 익지 않은 것을 기(飢), 채소가 익지 않은 것을 근(饉)이라 했다. 국가는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궁핍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황작물을 개발하여 보급하였다. 국가가 기근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적 위기가 정치적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기근도 아닐 뿐 더러 곡식이나 채소가 넘쳐나는 데도 고구마와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이 우리의 식탁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아마도 먹을 거리가 아무리 넘쳐 나도 중국 산 멜라민이 함유된 식품이나, 광우병 걸린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거부감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는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 만들어 낸 먹거리 기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근 중국산 멜라민 사태이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구마는 70-80년대 무안을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했다. 무안에서 나고 자란 40대 이상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한둘씩 있을 것이다. 필자가 나고 자란 무안 현경지역의 가을은 빨간 황토밭에 고구마 천지였다. 현경지역이 원래는 야산들이 많았지만 70년대 대부분 밭으로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었던 것 같다. 이 황토밭에서 자란 고구마는 버릴 것이 없는 작물이다. 고구마는 쪄서 먹고, 구어서 먹고, 술을 내려 먹고, 말려서 죽을 쑤어 먹었다. 고구마 술이나 말린 고구마에 팥을 넣어 쑨 죽은 아련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찐 고구마를 얇게 썰어서 4-5일 말린 고구마는 식품 첨가물로 범벅이 된 과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자연식품으로 요즘 아이들도 좋아 한다. 잎은 나물로 먹고, 줄기는 농번기 내내 쟁기질 했던 황소의 겨울을 지낼 여물로 활용되었다. 쇠죽을 끊인 후 잔불에 고구마를 넣어두면 아주 맛있는 군고구마가 된다. 뒷동산에 굴을 파서 저장한 고구마는 겨우 내내 비상식량 노릇을 톡톡히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배고품을 달래주었던 고구마는 한국 농촌사회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 하였다. 70년대 말 함평-무안 고구마 사건은 유신독재시대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국 농민운동에 큰 전환점을 주었던 것이다. 이 고구마 사건으로 부정부패한 농협직원 600여명이 적발되어 징계를 받았다. 이러한 농민운동의 전통은 1986년 4월 ‘수입개방저지 무안농민실천대회’ 등 최초의 농민 정치활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구황작물인 고구마가 이제 수퍼 웰빙 푸드(super well-being food)가 되었다. 미국, 일본 등의 선진 국가에서 고구마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들도 제시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시대 우주정거장에서 고구마를 재배해 우주식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식품영양단체인 공익을 위한 과학센터(CSPI)에서도 고구마를 전 ‘최고의 음식 10가지’ 중 첫 번째로 선택했다.

미국의 웨이크 포레스트 의과대학 로버트 코델 교수는 “수술 후의 회복과정에 있거나 장에 문제가 있는 등 식이장애가 생겨 고생하는 환자들이 고구마를 충분히 섭취한 후에 다양한 방식으로 증상이 호전됐다”고 주장하였다. 코델 교수는 “우리가 아는 식품들 중 고구마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식품”이라면서 “하루에 고구마 하나씩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고구마는 비타민 A·C·E와 칼륨, 섬유소 등 미량원소가 풍부하고,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능력이 탁월한 식품으로 밝혀지고 있다. 활성산소는 우리 몸 안에서 산화작용을 일으켜 세포를 공격하고 DNA 구조마저 변형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호박고구마로 불리는 노란색 고구마에는 베타카로틴이, 자색 고구마에는 안토시아닌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들은 노화와 각종 질병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대표적 항산화물질이다.

또한 고구마는 ‘최고의 항암식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도쿄대 의과학연구소는 고구마의 발암 억제율이 최대 98.7%로 가지, 당근, 셀러리 등 항암효과가 있는 채소 82종 중 단연 1위라고 밝혔다. 고구마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다른 식품의 식이섬유보다 흡착력이 훨씬 강해 각종 발암물질과의 원인으로 보이는 담즙 노폐물, 콜레스테롤, 지방까지 흡착해서 체외로 배출시킨다는 것이다. 생고구마를 자르면 하얀 진액이 나오는데 ‘얄라핀’이라는 이 성분은 장 안을 청소하는 기능이 있어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펴낸 <백년장수의길>에서도 고구마에는 9가지 아미노산이 들어 있으며 필수 아미노산인 '리진'이 흰쌀이나 밀가루보다 많이 들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많은 량의 점액 단백질을 공급해 심장혈관계통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미리 막으며 동맥의 탄력성을 유지해 준다고 한다. 고구마에 있는 섬유소는 잘 소화되지 않으므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넘어 가는 것을 막는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며, 장안에서 젖산균이 잘 자라게 하며 변비도 미리 예방한다. 특히 고구마의 섬유소는 피 속 콜레스테롤 양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며 비만증을 막는 효과도 크다고 한다. 특히 고구마에 들어 있는 카로틴은 암을 미리 막는 효과가 아주 높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구마가 바이오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고구마 원료를 이용한 바이오플라스틱 생산과 이를 이용한 자동차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농업연구청(ARS)은 고구마의 경우 바이오 연료(biofuels)인 에탄올(ethanol) 생산에 필요한 탄수화물 생산에 있어 옥수수보다 두세 배 더 높은 수율(yields)을 보인다고 발표 하였다. 고구마는 에탄올 생산 작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율을 보이는 작물인 사탕수수가 갖는 하한치(lower limits)에 근접하는 탄수화물 생산 수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들 작물의 경우 옥수수에 비해 비료와 농약 투여 요구량이 적기 때문에 더욱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구마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기근 시 백성들의 구황작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70년대 유신시절 농촌 민주화에 기여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의학적인 측면에서 인체의 다양한 부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새로운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가고시마에는 소주를 만드는 주정회사만 128개, 전분공장만 23개이며,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상품도 330종이나 되어 지역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황토고구마클러스터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무안지역에서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잘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과거 손으로 심고, 낫으로 순을 치고, 쟁기로 수확하고, 굴을 파서 저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무엇보다 먹거리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산 멜라민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70년대 고구마 사건을 교훈 삼아 투명한 유통과 판로에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친환경 무안 고구마가 단순한 웰빙 식품을 뛰어 넘어 많은 부가가치를 내도록 첨단과학과 연계되어야한다. 무안고구마클러스터에 공장 100개 유치가 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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