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무안읍 노맹순 씨‘어머니’

제7회 여성백일장 대회 입상자

■대상(산문) : 노맹순(무안읍)

■최우수상 : 조순호(삼향, 운문), 정광숙(초당대, 산문)

■우수상 : 박옥실(목포, 운문), 김순의(목포, 산문)

■장려상 : 이상희(목포), 변경자(무안읍), 이민영(목포시), 윤화순(무안읍), 박선옥(무안읍, 이상 운문),  고이께 가즈요(운남), 박진솔(초당대), 안진주(목포대), 김예슬(초당대), 이미정(목포대, 이상 산문)

무안문화원(원장 서오근)이 주최한 제7회 전남도지사 상타기 여성백일장 대회가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안읍 불무공원 일대에서 개최됐다.

여성들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문학성을 발굴 신장시키고, 정서함양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 여성백일장 대회는 해마다 관내 많은 아마추어 작가 여성들이 참여해 문단에 진출해 왔다. 

18세 이상 여성 52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는 산문부, 운문부로 나뉘어 치러졌고, 서오근 무안문화원장, 김창진 교수(초당대, 수필가), 서정자 교수(초당대, 수필가), 허형만 교수(목포대, 시인, 문학평론가), 이태헌 한국문협무안군지부장(동화작가) 등이 심사를 맡았다.

심사 결과 무안읍 노맹순 씨의‘어머니’가 대상을 차지, 도지사 표창과 상금을 수상했고, 최우수상에 운문부 조순호(삼향) 씨, 산문부 정광숙(초당대) 씨가 각각 선정돼 무안군수 표창과 상금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우수상 2명, 장려상 10명(운문, 산문 각 5명)이 선정됐다.

서정자(초당대 부총장) 심사위원은“이번 대상으로 뽑은 노맹순 씨의‘어머니’는 입상자가 말했듯이 육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록 가방끈이 짧아 맞춤법도 틀리고 작품의 흐름이 다소 거칠지만 가슴속에 진솔함이 느껴지고 삶의 흔적이 베어있어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입상작들은 무안문화원에서 발간하는‘문화무안’9호에 게재되며 입상자가 원할 시에는 목포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진학을 주선한다.

한편, 이번 여성백일장 대회에는 관내 이주여성들이 다수 참가했고, 이중 운남면 고이께 가즈요 씨가 장려상을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대상> 어머니

노맹순(무안읍)    

아파트 뒷마당 시멘트 바닥 틈사일 배꼼이 고개 내민 파란 잎 하나 마당위에 죽 늘어져 있는 빨래 줄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빨래를 널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네. 그 후 얼마쯤 지난 뒤였을까 이른 아침 빨래줄 앞에서니 내 눈에 확 들어 온 먹때깔 나무 한 그루.

어머나 먹때깔이가 벌써 익었네. 순간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에 먹때깔 나무를 꼬옥 가슴에 안고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간다. 어머니를 그리며 조그맣고 까만 먹때깔 열매를 조심스레 골라 한입 가득 넣고 물으니 톡톡톡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희생의 향수가 진하게 느껴 온다.

그래 바로 그 시절 그 맛이야.....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는 순간 코끝이 찡해오며 가슴이 울컥거림과 동시에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린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이지만 생전에 계실 때 특별나게 남기신 말씀은 기억나지 않으나 육십이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나에게 가장 존경했던 분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난 서슴없이 우리 어머님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살아생전에 구남매를 낳으셨으나 육남매를 가슴에다 한으로 묻고 남겨진 삼남매를 살리려면 타관 물을 먹어야 한다는 무속인의 말에 따라 이고 저곳 수십 번을 이사했으며 우리 오빠 성함이 일곱 가지나 되었다니 그 얼마나 자식들을 위해 노심초사 하셨을까.

오늘은 음력으로 팔월 십구일 오년 전 팔십 육세로 소천하신 우리 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  날이어서 더 감회가 깊다. 이른 아침 해제면 대사리 고향 선산에 계신 어머니의 묘소에 국화꽃을 드리려니 어머니의 생전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 목이 멘다.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그때는 여중생들이 까만 옷에 하얀 칼라가 달려있는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걸 유심히 보신 어머니께서는 책이 좋아 호롱불 밑에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나를 보시고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보내지 못할 것을 예상 하셨던지 책을 그렇게 좋아하느냐며 한숨을 지으시곤 하셨는데 언제부터 준비하셨는지 나의 웃옷에는 언제나 새것 같은 깨끗하고 하얀 칼라가 붙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밤낮으로 일만 하셨고 주무시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 틈에 칼라를 빨아 숯불을 피워 다림질까지 해서  내 옷을 중학생 옷처럼 만들어 놓으셨는지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입고 다녔는데 가끔씩 앨범을 보다가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속에 나 혼자 하얀 칼라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노라면 자상하셨던 우리 어머니의 은혜가 뼛속 깊이 사무쳐 온다.

먹을 것이 가장 귀했던 보릿고개 그 시절 일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어머니 손에는 어김없이 까만 먹때깔 열매가 들려 있었다.

난 당연하다는 듯이 그 먹때깔 열매를 받아 단번에 입안 가득 넣고 깨물면 톡톡톡 터지면서 달콤한 맛이 얼마나 좋던지 큰 두 눈을 껌벅거리며 팔짝팔짝 뛰면서 행복해 하는 날 바라보시며 어여쁘신 큰 눈으로 미소 지으시던 우리 어머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흔하고 흔한 비닐봉지 한 장 없던 그 시절에 그 여리고 조그마한  먹때깔 열매를 그것도 남의 집 김을 매면서 한알 두알 어떻게 모으셨을까.
다시 한번 어머니의 그 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난 지금도 먹때깔 나무를 보면 일상생활에 쫓기어 한동안 잊었던 어머니의 향수 맛을 그리며 그때 그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그 조그맣고 까만 열매를 찾게 되는 버릇까지 생겼다.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은 나의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 이사 가셨던 곳마다 싫은 소리 한번 듣지 않으시고 매사에 존경만 받으시던 나의 어머니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농부들의 땀 흘려 지어놓은 곡식들이 수고의 열매로 보답하는 이때쯤이면 매년마다 변함없이 먹때깔이 열리는 나의 동심 속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 고향 속 어머니의 향수에 젖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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