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경영인회 무안군연합회 조희조 회장

송아지 4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100여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농업인이 있어 찾아갔다.

무안군 운남면 연리에 사는 조희조(43)·이숙기(42)씨 부부가 주인공.

조씨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렸을 적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던 추억과 넉넉한 고향 들녘을 잊지 못해 81년 순천 농업전문대학을 마친 후에도 줄곧 고향을 지키며 살고있다.

지금은 두 자녀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 이지만 조씨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소에 대한 지식이 없던 조희조씨는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 84년 군 제대 후 무작정 젖소 4마리를 샀다. 소 한 마리면 자녀를 가르칠 수 있었던 70년대를 생각하며 “우유를 생산 할 수 있는 젖소면 부모님을 모실 수 있고 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은 너무 일찍 찾아왔다.

그 해 11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안의 살림을 맡아 하시고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자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탈감에 빠졌다고 한다. 그 후 실의에만 빠질 수 없다고 느낀 조희조씨는 결혼을 택했다. 85년 중매로 지금의 부인 이숙기씨를 만났지만 결혼 자금이 없어 처음에는 동거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누님을 먼저 결혼식을 올려 드린 후 조씨는 뒤늦은 87년 2월15일에서야 웨딩 마치를 울릴 수 있었다고 했다.

결혼을 계기로 해서 낙농 인으로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젖소 사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갑작스런 질병이 찾아와 소가 죽기도 하고 우유를 생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조씨는 소와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련이 닥칠 때마다 그의 발길을 잡아두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향이었고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지켜준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선친의 말씀을 각인하며 이를 악 물고 고향을 지킨 조희조씨.

그런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2001년 8월에 젖소 100여두, 착유우 50두를 키우는 전문 낙농인 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설계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정부의 지원이나 후계자 자금으로는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하지만 올해는 첨단 장비인 사료 자동 지급기를 설치해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볼 예정이라고 한다.

조희조씨 부부는 젖소 100마리를 키우는 분주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조씨는 무안군 농업경영인 협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정 심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농어민 신문 무안 지국장 직도 함께 하고 있다. 부인 이숙기씨 또한 망운 중학교 자모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사회 활동에 열성적이다.

이런 부부의 열성은 자녀 사랑으로 이어져 둘째 아들인 조태호(16)군이 1999년 과학 경시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학급에서 반장을 할 정도로 주변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부 또한 많은 분야에서 상을 수상했다. 지역 사회 발전에 공헌을 해 조희조씨는 1999년에 농협 중앙회 회장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도지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인 또한 2000년에 무안군으로부터 훌륭한 어머니 상을 수상했다. “그런 바쁜 활동과 산적한 목장일 속에서도 결혼 기념일을 한번도 잊어 본적이 없다”는 부인의 귀뜸은 부부의 끈끈한 애정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을 늘 감사하며 살아가겠다”는 그들 부부가 있는 한 농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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